한센병 장애 딛고 유기질 비료공사 설립, 고비마다 기도로 극복

이원호 권사반석전원교회)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는 ‘새금강비료공사’를 설립한 이원호 권사(반석 전원교회·사진)는 굴곡 많은 삶을 살아왔다. 한센병 때문에 손가락과 발가락을 거의 잃었고, 한센병 지체 2급 장애가 평생 그의 뒤를 쫓았다. 고통과 불편함은 견딜만 했지만 사회적 편견과 냉대는 그를 절망으로 몰아갔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은 그를 버렸지만 절망과 고통이 굽이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거기서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신앙의 힘이 한센병 환자라는 편견과 장애를 극복하고 유기질 비료를 만들고, 믿음의 기업과 교회를 세우는 등 불굴의 삶을 살게 했다.
그는 참으로 험한 삶을 살았다. 세상 사람들의 편견은 말하기 싫을 정도로 모질었다. 한센병이 무슨 병인지도 몰랐던 어린시절, 그는 외로움과 설움을 가장 먼저 배워야 했다. 이전까지 한센병에 걸리면 전염을 우려한 사회의 잘못된 편견 때문에 동네에서 쫓겨나기 일쑤였고, 알 수 없는 손가락질과 오해까지 받는 수모도 다반사였다. 
병이야 참으면 그만이지만, 금쪽같은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지금은 아들을 목사로 키우고, 딸을 상담학 박사(과정)로 길러낸 장한 아버지이지만 한때는 품 안의 자식조차 마음대로 키울 수 없는 나약한 아버지였다. 부산 남구 용호동 국립병원에서 첫 아들을 얻었지만 고아원으로 보내야만 했다. 자녀들 졸업식에도 한번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이 그를 주님과 만나게 했다. 더 이상 아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삶의 터전이었던 부산을 무조건 떠났다. 그리고 대전에 동산성결교회에 머물렀는데, 그때 이성봉 목사를 통해 하나님을 만났다.
“불덩이가 굴러와 저와 제 아내의 품으로 안겼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불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의 삶이 통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부터 원망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가난을 피해, 편견을 피해 쫓기듯 살았지만 하나님을 만나 삶에 여유가 생겼다. 사람들이 자신의 병을 원망한 적이 없느냐고 물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라는 노래 가사 같은 대답이 자동으로 나왔다. 애통하는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위로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었다.
대전을 떠나 김천 삼애원에서 네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 권사는 농장 앞에 있는 소나무 아래에서 차가운 새벽이슬을 맞으면서 매일 기도했다.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며 삶을 헤쳐 갔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 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되갚아갔다. 20여년 전 양계장을 하면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이 권사는 교회개척을 위해 1억5000만원을 헌금했다. 당시 이병선 목사가 왜관에 성결교회가 없다며 이 권사에게 교회개척을 권유했는데, “이런 부족한 사람을 하나님의 도구로 써주신 것에 감사하다”며 당시 개척비용을 부채를 내서 바쳤다. 남몰래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서울신대 신학생 장학금과 후원금도 전달했다.
이 권사의 신앙에 하나님도 감동하셨는지, 교회개척 몇 개월 후에 경영부실로 경매에 나온 비료공장을 인수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충성한 덕분에 새금강비료 회사를 축복으로 얻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순수한 믿음을 소유한 그는 하나님의 사업에 쓰기 위해 수양관 부지를 또 매입했고, 몇 년 전 그곳에 반석전원교회를 개척, 건축했다.
김천 비료공장에서 임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가운데 이원호 장로, 오른쪽 고문 양봉룡 장로.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으로 시작된 회사는 계분 등 축산물을 톱밥으로 발효시켜 하루 8000포의 유기질 비료를 생산하는 친환경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자동화 설비도 갖추어 업계 3~4위를 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천성적인 부지런함과 포크레인, 페류다 등 못 다루는 기계가 없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능력, 그리고 꾸준하게 쌓인 신뢰가 오늘의 회사를 일구었다.
그렇지만 이 권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남달리 축복을 받았죠. 노력하고 충성한 덕분이죠”라며 하나님께 모든 공로를 돌렸다.  
이 권사는 평생 땀과 정성으로 일군 회사가 최근 부도 직전에 처했지만 여전히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한때 경영을 맡겼던 동료의 배신으로 부도위기를 맞았지만 “그나마 공장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고백했다. 현재 이 권사는 양봉룡 장로(모암교회)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회생의 길을 걷고 있고, 또 가족이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권사는 새금강비료회사의 수익금 10%를 선교사업에 쓸 것을 하나님과 약속했다. 나눔과 사랑이 있는 믿음의 기업을 후손들에게 물러주고 싶은 것이 그의 마지막 소원이기 때문이다.
‘한(恨)’을 ‘영(靈)’으로 극복한 신앙 안에서 인생역전의 삶과 꿈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비료문의:054)43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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