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호 본지 1면에는 3명의 목사후보생들이 아내와 함께(1명은 미혼인지 혼자였다) 손을 들고 선서하는 사진이 게재돼 있었다. 상당히 큰 규모의 예배실이었는데 축하객은 가족들뿐이었는지 선서하는 목사후보생과 아내들의 표정에 비해서 서늘함이 느껴질 만큼 텅 비어 있었다. 목사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자리에 하객이 많아야만 한다는 법은 없겠지만 그들이 가야하는 길을 예시하는 듯해서 안쓰러워지는 광경이었다.

▨… 사진을 본 어느 젊은 목사가 싱긋 웃으며 한마디를 툭 던졌다. “출세했네. 이름도 없는 새내기들이 성결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얼굴을 내밀고, 우리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인데…”
실제로 사진 설명에도, 기사에도 저들의 이름은 없었다. 진행된 행사에 비중을 둔 사진이었지, 인물이 누구인가에 관심을 둔 사진은 아니었으므로 이름 없는 이들이 주인공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그래도 자신의 전부를 결단하는 목사안수식인데 총회 차원에서 거행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젊은 목사가 사진을 본 소감을 에둘러 말했다. “한꺼번에 160명이 안수를 받는 것은 무슨 제품 생산 공장도 아니고 오히려 의미가 반감되지. 몇 명만 안수 받는 자리가 초라해 보인다면 시·도별로 몇 지방이 연합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 그렇지만 될 수 있을까?” 또 다른 젊은 목사가 눈을 찡긋하며 남이 들을 새라 소리를 낮추었다.

▨… 젊은 목사들이 내린 결론은 총회 차원에서 목사 안수식을 거행하는 안을 제기한다고 해도 통과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각 지방회를 이끌어가는 토호세력(?)들이 안수의 영예를 포기하기에는 그 맛에 너무 깊이 젖어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몇 지방이 연합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 소속 교회들이 청빙하는 조건으로 안수는 받지만, 전도사였던 사람이 부목사가 되는 경우는 하늘의 별따기 다음이다. 서류는 서류일 뿐이고 대부분의 새내기 목사들은 안수 받는 순간 새 일터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하는 것이다. 그 길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한 첫 발에 많은 사람이 모인들, 경비만 늘어나지 않겠는가. 안수 받는 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나아갈 길이 문제인 새내기 목사들의 표정이 십자가의 각오 때문에 서늘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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