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해인가, 대학입학 합격통지서를 받은 젊은이가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건축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추락사했다. 이 가난한 젊은이의 죽음을 신문들은 ‘불타는 향학열’로 보도했었다. 과연, 향학열이 그 젊은이를 삼켜버린 것일까? 그는 공사장의 부교에서 실족해 떨어졌다기 보다는 이땅의 젊은이들이 개미떼 같이 뒤엉켜 올라가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에서 아등바등하다가 떨어진 것은 아닐까?

▨… 흔히 교육은 이데올로기적 기능과 테크놀로지적 기능을 갖고 있다고 정의된다.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공동체의 정당성, 가치관, 사유방식 등 공동체의 문화를 후손에게 전하고 테크놀로지적 기능은 공동체에 필요한 물질적 생산 기술을 개발하고 전수한다. 개발도상국가였던 우리나라는 교육의 테크놀로지적 기능에만 매달려 경제는 발전되었지만 비인간화가 가속되었다.

▨… 오리를 함께 가주기를 요청하면 십리를 동행해주고 겉옷을 벗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속옷까지 벗어 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늘의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져버린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 기독교교육(교회교육)의 방향은 도대체 어떻게 설정돼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때 따르는 책임성은 가르쳐지고 있는가.

▨…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성서의 말씀은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정의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라, 소경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 앞에 걸릴 것을 두지 말라고도 하지만 가난한 자와 이방인을 위해서 포도밭의 포도를 남겨둘 것도 명령한다. 우리의 교회교육은 과연,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위한 것인가?

▨… 제2회 성결교육인의 밤이 열렸다. 테크놀로지적 기능이 배제되어질 수밖에 없는 교회교육의 특성 때문에 교회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그 현실에서도 묵묵히 교육의 십자가를 지는 성결교육인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성결교회의 미래가 저들의 어깨에 달려 있기에 오늘의 교회교육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그 밤의 성결교육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교회교육의 위기를 성결인 모두가 부여안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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