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교회로 지은 건물이 아니고 지은지도 20년이 넘어서 우리 예배당 건물은 손볼 데가 너무나 많습니다. 지하 예배실과 1층, 2층을 모두 합쳐도 120평이 채 안되는 건물임에도 손써야할 곳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습니다. 큰 건물을 교회로 쓰고 있는 목사님들의 머리는 터져나가지 않을까 슬며시 걱정하면서 가만히 웃었습니다. 오지랖도 넓기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게 큰 교회를 감당하라고는 하지 않으시지…

저는 견디고 있었지만 우리 믿음의 가족들은 예배실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색깔이 바래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나 봅니다. 가스 배관과 전깃줄이 한데 얽힌 채 창문과 팬을 가리우느라 친 블라인드마져 낡아서 비틀어져 있다는 사실이 날 선 검처럼 마음을 베어버렸나 봅니다.

목사님, 노동절에 저희가 페인트 새로 칠할께요.
남전도회원들이 팔을 걷어부쳐 보겠다고 나섰습니다. 3년 전인가에는 여전도회원들이 서툰 솜씨지만 직접 페인트를 칠했었는데 이번에는 남전도회가 나서겠다는 것입니다. 잘 될까 조금은 걱정되었지만 예배실이 깨끗해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목사님, 저하고 친한 목사님이신데요 우리교회의 페인트 작업을 도와주실거에요.
직분을 맡지 않겠다고 고집부려 제 마음을 섭섭하게 만들면서도 교회일에 늘 앞장서시는 분이 한눈에 목사님임을 알아볼 수 있는 분을 소개하셨습니다.

목사님이 무슨 페인트 일을 하셔요?
문득, 월간 기독교사상 주간 일을 맡고 있었을 때 인사를 나누었던 어느 목사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목사이면서도 미장이 일을 하러 다니며 그 일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분은 저와 비슷한 연배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을 간다는 점에서는 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믿음의 세계와 깊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제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 밤에 저는 우리시대가,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목사의 어떤 전형을 그에게서 찾은 것 같아서 전율했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목사 안수를 받는다면 그를 닮지는 못하더라도 흉내라도 내는 목사가 되어야겠지라고 다짐하기도 했었습니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을 알고는 있었습니다. 제게 소개시켜주신 분의 소개가 헛말이 아님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도료를 다루는 솜씨가 일류 도장공의 경지를 깨우친 듯 거침이 없었습니다. 예배실이 하얗게, 깨끗하게 바뀌어져 갔습니다. 저는 그냥 우두커니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의 예배실 도장공사를 통해 잊어버렸던 기억을 되살려 주심으로써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목사의 전형에 곰팡이가 슨 것은 아닌지 살펴보도록 깨우쳐 주시고자 하셨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목사로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확인이 명치 끝을 후벼파서 페인트를 칠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와 함께 요셉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일도 감당하신답니다. 또 목사님이 담임하고 계시는 교회의 외형적인 규모는 우리보다 훨씬 작다고 합니다. 그만큼 목사님이 감당 하시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목사님은 아무 상관도 없는 교회를 위해 수고해 주셨습니다. 마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의 봉사의 전형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려는 것처럼.

하나님께선 이렇게도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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