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국가대표 모 선수가 선배 겸 코치로부터 구타를 당했다. 방송사 인터뷰 화면을 통해 보인 그 선수의 얼굴과 가슴은 멍이 들어 있었고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국제 대회에도 불구하고 즉각 감독이 사퇴를 표명하고 해임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배구연맹을 비롯해 체육계도 즉각 나서 하루 만에 해당 코치에 대한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내리고 제발 방지를 위해 징계에 관한 내부 규정을 강화했다. 또한 협회 차원에서 코치에 대해 직접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폭력은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교회가 ‘사랑’을 강조하고 ‘제자도’를 강조한다고는 하지만 ‘천사(?)의 모임’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임은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갈등과 대립뿐 아니라 폭행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극단적인 경우는 교회 내에서의 주먹다짐이 일반 언론에 보도되어 선교에 심각한 장애를 조성하기도 한다. 기독교 언론은 이러한 보도를 잘 안하고 있어 많이 알려지지는 않지만 일반인이 아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교회는 직접적 폭력보다는 언어적 폭력이나 소문이라는 형태의 간접적 방식이 더 많다. ‘형제를 사랑하라’,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감정이나 분노를 사회와 같이 행동으로 표출하지 않고 ‘말’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말’조차 하지 않고 타인에게 상대방을 흠집 내고 비하하는 방식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점에선 직접적인 폭력보다 이러한 언어적인 방식이 상대의 인격을 더욱 모독하고 더 큰 상처를 유발할 수 있다.

최근 총회 안팎에서 이러한 언어폭력과 주먹을 사용한 행위가 빈번해 지고 있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모 인사는 총회 장소에서 의장석을 점거하고 의장을 밀치고 마이크를 빼앗기도 했고 어떤 이는 전화로 상스런 욕설을 넘어 할 말 못할 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에게 현재 상황의 책임을 돌리기보다 ‘총회’에 원인을 떠넘기고 공적 업무와 관련된 일로 인한 문제임에도 ‘개인 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얼마 전 모 교회는 당회원간의 폭행사건이 벌어진 바 있고 5년이 더 된 이야기긴 하지만 어떤 교회는 두 개로 쪼개져 마찰 과정에 목회자가 안타깝게 심근경색으로 죽는 사태도 벌어졌다. 더욱이 교회 내의 이러한 문제는 덕스럽지 못하다는 이유로 덮어지기 일쑤고 총회 안팎의 일부 사람들에게만 회자되었다. 때론 언론으로서 잘잘못을 명확히 지적해 이를 바로잡아야 할 신문사 또한 공범 아닌 공범이 되어 침묵으로 묵인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최근 안타깝게도 지근거리에서 폭행이 발생됐다. 가해한 측에서는 밀쳤다고 하고 피해 측에서는 맞았다고 하는데 손을 사용하고 네다섯 차례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피해자 측 의견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밀쳤다면 한두 번 정도에 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은 사태 발생 후 20여일 동안 침묵했다.

 사건 자체가 덕스럽지 못한 것이고 관련자 모두 교단의 중요 역할을 하는 분들로 신문사가 보호(?)할 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가해자 측에서 이렇다 할 사과가 없는 상황에서 고소고발로까지 비화했다. 더욱이 이를 풀어야 할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은 아직 지도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체육계는 사태 직후 하루 만에 사태를 파악해 입장을 발표했고 폭력을 행사한 코치에 대한 징계를 결정했으며 선수보호 차원의 대책을 시행했다. 방송에 폭행의 흔적이 사실적으로 보도되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한 조치가 실효성이 있느냐는 것은 의문이 들지만 신속성 하나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점을 볼 때 우리 교회의 대응은 너무 늦다 못해 굼벵이 수준이다. 잘잘못은 명확히 밝혀주어야 하며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들은 사태 해결 대책을 내어 놔야 할 것이다. 사태를 방치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오히려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모두(사건 당사자가 속한 곳의 지체들)에게 상처를 간직한 채, 열정을 상실한 채 일하라는 것과 같다. 두 사람 모두 교단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고 일해 온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형태든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사태 관련 당사자들로부터 사태의 경위를 들어야 하며 그 경위가 어떠하든 폭력적 행위의 당사자의 사과는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함을 불문가지다.

얼마 전 어떤 목회자가 본지에 대해 ‘가십적인 내용을 보도기사로 썼다’는 비판을 들은 적 있다. 사실 일반 언론은 공인과 관련된 폭력은 보도기사로 다루지만 앞서 말씀한 분의 의견을 존중키 위해 조금은 다른 형태로,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음에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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