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 전도대 집회와 교회설립

1926년 봄에 한춘경 전도인은 마을의 핍박 속에서 골 뜸 우물 옆집으로 집을 이사하고 그곳에서 계속 신자들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전에 보다 좀 한가한 곳이고 방도 커서 좋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핍박을 했다. 할 수 없이 한춘경 씨가 모 교회인 금당리교회에 가서 핍박받은 얘기를 하였고 그 교회 김달호 전도사가 총회에 연락, 총회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개척전도대를 파송했다.

전도대원들은 목사와 전도사들로 구성되었는데 네 사람이 전도 차량에 큰 천막을 싣고 왔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이웃 마을 김달호 전도사였다. 마을에 큰 차가 나타나자 차를 처음 본 시골 아이들이 금방 몰려왔다. 전도대는 비교적 넓은 한나 씨 집 마당에 큰 천막을 친 후, 두 사람이 나팔을 불고 한사람은 큰 북을 둥둥 울리며 찬송을 불러 사람들을 모았다. 평소 별로 구경거리가 없는 한적한 시골에 나팔소리와 북소리가 나니 구경하러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녁부터 시작한 전도부흥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은혜를 받았다. 집회는 오전과 저녁 두 차례를 했지만 예수의 복음을 처음으로 듣고 감동을 받아 마을여자들, 처녀 총각들, 또 어른들 몇 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이 때 귀한 열매는 마을에서 알뜰한 살림꾼이요 정숙하기로 소문난 여자 유문종 씨가 믿게 되었고 부지런하고 인심 좋은 노장의 어른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 두 분의 신앙으로 역리 마을의 인심이 교회 쪽으로 돌아섰고, 철없는 아이들도 눈물을 흘리고 자기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주일학생들이 되었다. 특히 이 집회를 위해 총회에서 500원이란 큰돈을 들였는데 노장의 씨라는 큰 어른이 마을 남자로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게 되어, 노장의 씨는 500원짜리 집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 때 500원은 요새 500만원보다 더 큰 돈이었다.

이때부터 금당리교회 김 전도사가 주일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인도하였고 역리기도소는 차츰 신앙의 기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평소 때는 한나 씨가 처음 믿기 시작한 여자들의 집으로 심방 가서 기독교의 진리를 알기 쉽게 가르쳐주고 또 기도했다. 특히 집안에 병을 앓는 자가 있으면 한나 씨가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면 금방 낫게 되는 기적이 따랐다. 이 소문이 나자 아픈 집에서 한나 씨를 오라고 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 낫는 역사가 일어나 신자들이 차츰 많아졌다.

신자가 점점 많아지자 총회에서 한인업 전도사를 역리기도소로 파송했다. 한 전도사는 우선 한춘경 전도인의 집 윗방에서 살면서 시간만 나면 마을을 다니면서 열심히 전도했다. 한 전도사는 이곳에 오기 전에 총회 전도대에서 일한 사람이어서 전도에 열심을 냈다. 1928년에 다시 총회전도대를 초청해서 크게 전도부흥회를 했다. 그 결과 수 십 명의 결심자를 얻었고, 순회목사 전승운 목사가 오자 새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또 신한나와 유문종 그리고 노장의 어른이 교회서 처음으로 집사로 임명되었다.

한 전도사는 신한나 집사가 신유 은사가 있음을 알고 전도할 때나 병자 심방할 때마다 동행해서 전도했다. 마을 가까운 산길에 산당이 있어 몇 년에 한 번 씩 마을 제사를 드리는 사실을 알고, 뜨겁게 기도한 후 두 사람이 가서 불질러버렸다. 이를 알고 마을 사람들이 한 전도사에게 항의할 때 마을에서 존경 받는 노장의 집사가 두둔해서 조용히 해결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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