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의 3번 째 책은 ‘승자의 혼미’다. 로마가 포에니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부터 줄리어스 시저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100여년을 다뤘다. 카르타고와의 오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스키피오의 군대는 명장 한니발과의 싸움에 얼마나 무섭게 치를 떨었으면 카르타고의 성을 모조리 박살내고 그것도 모자라 성벽 전체를 가루로 만든 뒤 소금까지 뿌렸다. 이후 로마는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찬란한 제국이 됐다. 그러나 승자의 비극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외부의 적을 물리치고 나자 내부의 ‘혼미’가 시작된 거다.

우선 전쟁 영웅 스키피오가 버림받았다. 사용처가 불분명한 500달란트의 돈 때문에 횡령 혐의가 덧씌워져 탄핵을 당한 것이다. 카토를 비롯한 당시의 정적들은 스키피오가 독재를 할 것을 우려했다지만 로마에 천하를 선물한 스키피오를 내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당시 재판정에서는 “스키피오의 수모는 그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의 명예를 더럽힐 것”이라며 변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영웅의 희생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이후 로마는 크라쿠스 형제의 개혁을 좌절시켰다. 형 티베리우스와 동생 가이우스는 로마가 얻은 엄청난 자산을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는 수많은 개혁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개혁법안들은 기득권을 내주는 데 불만을 품은 귀족과 원로원의 미움을 사면서 갈등과 음모, 논란과 분쟁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뒤 이어 등장한 집정관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에도 순탄한 때는 길지 않았다. 곳곳에서 로마에 반기를 드는 전쟁이 일어났고 노예의 반란과 내전도 끊이질 않았다. 마리우스와 술라는 전쟁에는 능숙했지만 국내 정치에서는 정적을 숙청하고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한 시위와 음모를 서슴지 않았다. 폼페이우스와 크라쿠스도 전쟁을 지휘하고 귀환할 때는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에 군대를 해산해야 한다는 규정을 어기고 로마까지 군대를 몰고 와 집정관 자리를 내 놓으라고 무력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로마인 이야기 3탄 ‘승자의 혼미’ 줄거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집권 한나라당의 모습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고 똘똘 뭉쳐 선거를 치러냈지만 총선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갈등은 치열한 권력투쟁의 모습을 닮았다.

겉으로는 정의와 개혁, 국민의 뜻을 내세웠지만 승리의 공신들은 각자의 몫을 챙기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한 박근혜 전 대표는 ‘승리의 과실’을 나누어 주기는커녕 자신을 따르던 핵심들을 무참히 제거한 대통령 측근들에게 ‘속았다’고 외치며 노여움을 표시했다.

박 전 대표 핵심들도 그녀의 치맛자락을 잡고 ‘나 어떡해’만 외친 것이 아니라 ‘친박연대’라는 이상한 결사체를 조직해 독자적으로 선거를 치르고 있다. 대통령 측근들조차도 ‘형님파’니 ‘이재오파’니 ‘정두언파’니 하는 세간의 수군거림을 당하면서까지 자기 사람을 공천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한나라당의 내홍이 곧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어떤 결과를 얻을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선거 이후 살아남은 자들은 또 치열한 전투를 치른 뒤에야 새로운 질서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판을 두고 승부욕 강한 사람들이 살벌한 생존투쟁을 벌이는 검투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누가 이기든 이것이 찬란한 로마제국처럼 ‘승자의 혼미’이후에 안정과 발전을 가져오는 모습이어야지, 서로를 파탄 내는 무제한의 극한전쟁 소용돌이로 몰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집권세력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책임지는 엄중한 사명 안에서 정치투쟁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로마도 100년의 내홍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팍스 로마나’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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