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온유와 겸손의 목회철학을 실천한 그는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강조하며 교회의 물량주의를 경계했다. 미자립교회 지원, 극빈 가정 돕기 등 구호사업과 교회연합운동에 앞장서 개신교계의 신망을 얻었고 노년에 들어서도 북한결핵어린이돕기운동 등에 앞장섰으며 개신교계 각종 행사에 참여해 원로로서 바람직한 발전방향에 대한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조선일보)

▨… 그는 “불신가정에서 자랐지만 산 중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했고 또 확고한 비전을 마음에 품어 그것을 이루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단돈 15달러를 몸에 지닌 채 하늘 아버지의 인도하심만 믿고 도미유학을 실현했다(이원설·설교집 추천사)”고 한다. 폐결핵을 앓고 난 이후라 건강이 여의치 못했지만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믿었던 것이다.

▨… 1975년 3월 그가 목회를 시작한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도대체 오늘 한국교회 강단에서 설교하는 목사들이 신학적이니, 교육적이니 하는 말들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비로써 신학과 목회의 괴리현상을 목도했던 것이다. 신학이 신학자만의 독점물이 되는 한국적 목회 현장을 괴로워하며 목회 방향을 재설정 해야만 했었다. (정진경·신학과 목회)

▨… “인간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날 때에는 무엇인가를 남겨놓고 가야 합니다. 나의 노력의 산물, 나의 조그마한 업적 등 발자취를 남겨야 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엄숙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남겨놓고 갑니까?’ 인생의 목적은 성취에 있습니다.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고로 내가 왔던 흔적을 남겨놓고 가야합니다.” (설교:꿈과 현실의 조화)

▨… 정진경 목사, 그는 무엇을 남겨놓고 떠난 것일까? 성결교회를 대표했던 목사로서 과연 그는 무엇을 남긴 것일까? 그를 아꼈던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과감하게 투쟁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군사정부시절의 어떤 일을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예언자나 투사이기 보다는, 제사장적인 성결교회의 목사 직분에 자족하려 했던 것 아닐까. 그점에서 그는 성결교회 목사의 전형이었다. 교단이 시끄러우니 떠난 그가 새삼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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