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1일 37세의 나이로 장로에 임직되어 올해(2009년)가 만 30년을 맞는 해 이기에 ‘나’로서는 감회가 남다른 해가 된다. 그런데 감사하고 기뻐해야할 마음보다는 마음 한구석에 있는 허전함이 ‘나’를 괴롭게 한다. 세월이 덧없이 빠르다는 것과 장로로 세움 받아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하나님 앞에는 빈손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장로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여 헌법으로 자격과 권한과 직무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며 성경에도 많은 곳에서 그 자격과 직무를 기록하고 있다. 평신도 대표로 교회 정치에 참여할 권한이 있고 교인들의 영적상태와 육적인 문제까지 보살필 책무가 주어져 있다. 그 대신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주시는 복과 이 세상에서 누리는 복은 대단하다. 하나님께서는 장로의 직을 올바르게 행하면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주신다(벧전 5:4)하셨고 성도들로부터는 존경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유무형의 보너스까지 뒤따르게 되니 존귀한 직분임이 분명하다. 거기에다 ‘나’에게는 70이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힘이 있어 일할 수 있도록 일터까지 기업으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과연 ‘나’는 이를 누리기에 걸맞은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고 또한 그것을 ‘내’마음의 잣대로 받은 것과 행한 일을 생각나는 대로 대차대조표에 적어 비교해보니 그 모습이 너무 초라하여 부끄러운 머리를 들 수 없다.
장로의 직이 오로지 섬김과 희생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존경받고 다스리는 직분으로 착각하고 행동하지는 않았는가?, 교인의 영적 상태를 돌보기 위하여 몇 번이나 심방했으며 권면은 해 보았던가?, 교회 부흥을 요구하면서 ‘나’는 무엇을 했으며 전도는 얼마나 하였던가?, 우환질고와 낙심 중에 있는 자를 찾아는 보았고 긍휼이 여기는 마음으로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는 몇 번이나 하였는가?, 어렵고 힘들어 곤경에 처한 이들의 힘이 되어 준 적이 과연 있었던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손뼉치며 축하하고 기쁨을 함께 나눈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주어진 책무는 소홀히 하면서 장로에게 주어지는 명예는 좋아하고 유무형의 보너스에 관심이 집중되어 민감하게 행동한 것은 얼마나 많았던가? 너무 부끄러워 기록해보기가 민망하여 글을 쓰는 손길이 더 이상 가지 않는다.
앞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약속하신 ‘영광의 면류관’은 받아야 되겠고, 성도들로부터‘저 장로처럼 살고 싶다’라는 장로가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세상 친구들로부터는 저 친구 같으면 나도 예수 믿고 싶고 주변사람들로부터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두 저 장로 같으면 세상이 달라지겠다하는 말을 듣고도 싶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집례하시는 목사님과 조객들의 눈에서는 너무 사랑하고 존경하던 장로이기에 헤어짐이 아쉽고 흐르는 눈물이 더한 장례식으로 이 세상을 마감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기만 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장로의 직분으로 살아온 날보다는 하나님께 가야 할 날이 더 가까이 와 있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마음이 조급해지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은혜, 사랑, 축복, 헤아릴 수 없기에 아무쪼록 여생만큼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며 살자고, 그리고 참 좋은 장로였다는 이름을 이 세상에 남기고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해본다. 그래도 시무장로 30년이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아 내 생(生)에 대한 기념비로 삼고자 서울강서지방회에서 시무 30년 이상인 목사와 장로에게 주고 있는 공로패는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