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공학, 교육 전공…조국 복음화가 최종 목표
백종윤 목사 5년간 학비 지원…‘사람=선교’ 사역

네팔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한국인 선교사를 찾아 한국 땅을 찾았다.

덩카 룽겔리(27세), 라주 티멀시나(24세·이상 남), 살린드라 타파(26세), 럭치미 따망(21세· 이상 여) 등 네팔 청년 4명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은 가난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큰 나라가 됐으니 너희들도 네팔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라”고 말한 어릴적 선교사의 말씀을 조국 네팔에 실현하기 위해서다. 또 100년 전 만해도 선교지였던 한국이 세계 최대의 선교대국이자 경제 대국이 된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서다. 일종의 ‘처치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옛 스승을 다시 찾은 것이다. 한국 땅에서 새로운 학문과 기술, 교육과 복지 등을 익혀 네팔의 가난과 무지, 비신앙적 형태를 물리치는 것이 이들의 비전이자 임무다.

이들에게 이런 신앙과 꿈을 심어준 선교사는 바로 백종윤 목사(길갈교회)다. 백 목사는 16여년 전 이들을 처음 만났다. 지금은 네팔의 대표적인 복지시설로 자리 잡은 ‘조이하우스’를 처음 만들 당시 백 목사는 이들에게 꿈과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백 목사를 만나기 전에 이들은 오갈 데 없는 고아신세였다. 따망 씨는 발목마져 끊어져 절망 속에 살던 아이였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선교’라고 믿었던 백 목사는 당시 네팔의 꿈나무들을 양성해 힌두 왕국을 조금씩 변화시키겠다는 포부를 갖고 카투만두 외각 지역인 탄코트에 조이하우스를 만들어 이들에게 무료 학습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백 목사는 아내의 건강 악화로 그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많은 세월이 흘렸고, 당시의 아이들은 이제 청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백 목사의 사람 선교에 대한 열정은 아직 식지 않았고, 네팔의 청년들도 그런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백 목사는 미완의 프로젝트를 다시 가동, 이들 청년들을 한국으로 불렀고. 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으로 달려왔다. 백 목사는 앞으로 이들을 ‘길러서 보내는 선교사’를 만들어 네팔로 다시 파송할 작정이다.

“선교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키우는 것이 결국 선교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이제는 선교사 파송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현지 지도자를 길러내 그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바꾸는 ‘안방' 선교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길갈교회는 이를 위해 앞으로 5년간 이들 네팔 청년들의 학비와 기숙사비, 용돈 등 일체의 생활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1년에 이들에게 지원하는 돈만 4000만원 이상이다. 이런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이들은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 수업을 1년간 받은 후 각자의 비전에 따라 대학에 진학할 계획이다. 타파 씨와 따망 씨는 서울신대 유아교육과에, 티멀시나 씨는 강원대 공과계열에, 룽겔리씨는 서울신대 신학과에 진학하겠다는 각오로 힘든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덩카 룽겔리 씨는 “백 목사님을 보면서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면서 “한국교회에서 뜨거운 신앙과 열정을 배워서 네팔에 돌아가서 그대로 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라주티멀시나 씨도 “백 목사님과 조이 하우스는 나의 부모처럼 나를 이끌어 주었다"며 “한국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해 최고의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살린드라 타파 씨와 럭치미 따망 씨는 “유아교육과 복지를 배워서 나처럼 불우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네팔 사회를 계몽하는데 힘쓰겠다"고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 조국의 복음화와 선진화를 위해 첫발을 디딘 네팔 청년들의 가슴에는 히말라야보다 더 큰 꿈이 꿈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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