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기독교 실증주의 연구 눈길
미군정, 1공화국 호혜적 관계 등 고찰
허명섭 목사(서울신대 겸임 교수)가 저술한 ‘해방이후 한국교회의 재형성 1945~1960(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는 해방 직후부터 1공화국까지 이어지는 시기 한국교회를 종합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선행연구와 기존 사료에 바탕을 두되 철저한 실증주의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번 저서는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연구로 눈길을 끈다.
우선 허 목사는 일제강점기 한국교회를 개괄적으로 고찰한 후 해방 이후 한국교회의 사회인식, 미군정시기와 1공화국 시기의 한국교회의 움직임과 정치참여 문제를 집중 조명한다. 또한 해외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한국교회 초기 분열과정에서 선교사의 역할 등 초기 한국교회 역사에서 선교사들이 어떠한 역할을 감당했는지 살핀다. 이밖에 한국교회와 공산주의에 대한 인식, 이북교회와 기독교인의 월남 문제, 한국전쟁 시기 기독교의 활동, 해방과 새로운 선교형태의 출현 등도 다루고 있다.
허명섭 목사는 해방 전후 미군정과 기독교의 관계 등을 종합한 후 “해방이후 한국사회의 기독교적 요소들을 기독교에 대한 당국의 특혜로 보려는 시각은 제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미군정의 기독교 우호정책은 의도적인 혜택이 아니라 간접적인 혜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당시 해방 이후 미군정은 이 땅에 서구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체제 수립을 위해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을 저지하고 한반도 내에 우익세력을 지원, 육성하였는데, 이 우익세력의 한 중심에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군정과 종교 관련 적산처리에서 허 목사는 “종교재산과 관련된 적산도 미군정의 정책에 가장 우호적이었던 기독교에 여러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처리됐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우호적인 적산처리는 단순히 미군정과의 친소관계 때문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일제 시대와 이북공산정권하에서 처했던 상황(필자 주-탄압 받은 것 의미)도 고려되었다 할 것이다”고 말한다.
기존 역사학계에서는 친미반공 주장, 정권 영합 등을 비판적으로 본 반면 허 목사는 “해방 후 한층 제고된 기독교의 위상, 공산주의 확장에 대한 위기의식, 친기독교 미군정의 수립, 그리고 한국교회의 축적된 인적자원 등이 바탕이 되어 한국교회는 현실 정치 영역의 중심지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종합적인 진단을 한다. 물론 허 목사는 “당시 새 국가 건설의 민족적 여망과 정치적 포부를 실현한다는 개인적 야망에서 기독교인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말로 한국교회 인사들의 개인적 정치적 진출의 동기 또한 인정한다.
미군정기에 시작된 한국교회의 정치참여 또는 정치운동은 제1공화국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교파별 약간의 시각차가 있었지만 한국교회의 정권에 대한 시각은 우호적이었으며 1950년대 초반에는 이승만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적극적이었다. 물론 주일행사 등 정치와 일정한 갈등이 있었고 1공화국 말기 상황에서 일정한 거리두기도 시도하지만 기독교의 시각은 친정부적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허 목사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정권 영합이라는 단선적인 이해는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허명섭 목사는 한국교회가 보수복음주의 입장이 강화된 과정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살핀다. 그는 “해방 이후 선교사의 재입국이 자유주의적 경향에서 보수, 복음주의적인 신학으로 회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북한 공산정권의 극심한 탄압을 피해 이북의 기독교 지도자들 다수가 월남하게 되면서 한국교회의 반공산주의는 한층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반공산주의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깊이 내면화되었으며 반공의 기수로서의 한국교회의 위치와 역할은 더욱 심화되었다”고 밝힌다.
<허명섭/서울신학대학교출판부/400쪽/1만5천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