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5일은 일제강점에서 해방된 지 64년이고 대한민국정부수립 61년이 된다. 우리는 국제정세에 어두웠고 외세의 침략야욕에 대한 올바른 대비책이 없었기에 그 많은 수모와 고난의 채찍을 받아야 했고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은 우리가 자고 있을 때 도둑같이 왔다(함석헌)’.

1910년 8월 29일 강제 한일합방 후 민족은 독립을 위해 해외로 흩어졌고 한국의 독립은 카이로 회담(1943. 11)에서, 그리고 1945년 7월 포츠담에서 독립원칙이 재확인되었다. 이후 해방은 맞았으나 세계 최빈국의 모습으로 수립된 정부는 6.25전쟁으로 더욱 피폐해졌다. 그러나 역경에 주저앉아 한탄만 할 수 없어 보릿고개에 도전했고 지금은 산업화에 성공하여 자랑스럽게도 선진국가, 중견국가로서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이념의 갈등과 정치적 혼란, 사상적 빈곤과 집단의 이해에 얽매인 대립, 주변 국제 정치 환경의 불확실성으로 또 다른 도전과 시련이 가로 놓였다. 여기에는 주민수탈의 고난의 행진을 하고 있는 불량스러운 북한이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의 무모한 행동을 어떻게 제어하고 풀어 나갈 것인가에 따라서 한반도에 드리우고 있는 추위와 어두움을 걷어내는 갈림길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북한에 대해 ‘괴뢰정권’에서 출발하여 ‘국가 대 국가’, ‘한민족이라는 특수한 입장’ 등으로 바뀌었고 또 호혜주의를 앞세워 의연한 대북접근으로 불신의 벽을 허물어 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대적 움직임과 북한의 더욱 강경한 태도에 머물러 있다. 고립을 자초하는 북한을 정상국가로 돌아오게 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나갈 때 민족해방의 참 의미가 있고 민족고난의 역사를 청산하게 될 것이다.

지금 기독교계는 민족사에 기독교가 끼친 큰 족적이라 할 수 있는 민족적 양심과 핍박을 거부한 인도적 정신을 새롭게 깨우치고 하나님의 섭리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기도할 때이다. 이 순간 이승훈, 이상재, 안창호, 김구, 조만식 같은 민족의 청지기 같은 인물이 한 없이 그립다. 목사, 장로, 집사와 교회건물만 보이는 세상이 아닌지 돌아 볼 때이다. 밤새 매질을 당하여 탈진한 예수님은 형장까지 십자가를 운반할 수 없어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강제로 지고 갈 때에 그 십자가를 조금이라도 들어 주었던가를 함께 생각해 봄직하다.

일제의 탄압은 장로회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1938)토록 강제했고 이에 저항한 교회와 교단은 폐쇄되거나 해산되었고 많은 기독인들은 순교와 옥중고난을 피할 길이 없었다. 우리가 얻은 해방의 기쁨은 모이고 싶을 때 어느 곳 어느 때에도 모여 기도할 수 있고 성경과 찬송가를 원하는 데로 제작하고 또 큰소리 내어 읽고 마음대로 찬송하며 교회도 건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8.15해방은 민족의 해방이기도 하지만 한국교회의 해방이었으며 우리가 신앙의 자유함을 얻은 날이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감사함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감사하다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마음이다. 일제탄압으로 성결교가 폐쇄되고 일본교회로 편입되었던 그 치욕의 아픔을 딛고 다시 재건을 위해 살림을 냈던 그 감격의 불꽃은 어디로 갔는지 깨어날 때이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바른 복음적 신앙으로 깨어나 민족사적인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복음의 신성성이 훼손되지 않는 그리스도의 윤리를 새롭게 여기며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시 90:1)’는 모세의 기도를 경청해야 한다. 또 일본을 섬기는 동방요배가 하나님 뜻이라고 설파했던 일과 신사참배와 정국신사위령목도죄를 철저히 회개할 때 미완의 광복이 앞당겨 이루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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