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일이지만, 어느 외국인이 “쓰레기통에서도 장미가 필 수 있겠는가”고 우리나라의 정치적 현실을 비꼬아서 온국민이 분노한 적이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를 벗어나자마자 남북이 분단되고, 곧이어 겪어야 했던 민족 동란은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는 커녕 실험할 겨를조차 얻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는 다만 빛 좋은 개살구였다.

▨… 세계경제 10대 강국이란 말이 무슨 깃발처럼 국민들의 가슴에서 펄럭이는 오늘의 시대에도 우리나라의 정치는 3류라는 딱지를 떼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소위 민의의 전당이라고 불리우는 국회에서는 걸핏하면 난투극이 벌어진다. 그것도 집단적이고 “너 죽어야 나 산다”는 식의 이전투구다. 저질 코미디같은 행태를 보는 외국인들은 다시 혀를 찰 것이다. 공장은 조금 세웠어도 역시 쓰레기 더미야 라고….

▨… 어느 신문기자는 “여의도의 정치 싸움논리는 내가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잘했거나 내가 상대보다 조금이라도 덜 잘못하면 이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 잘못을 조금이라도 더 부각시키거나, 내 잘못을 조금이라도 더 감추면 정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라고 썼다(조선일보 8월 4일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쓰레기 더미에서 썩는 내음을 맡았을 때 처럼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그러나 우리 성결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곤혹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여의도의 정치 싸움 논리라는 말 대신에 성결교회 정치 싸움논리라는 말을 대입해도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음이 확인되어지기 때문이다. 있지도 않은 일을 있다고 우기고 할 수도 없는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하려 한다고 덤터기 씌우는 풍토가 은연중에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음을 대부분의 성결인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 오직 인간만이 실제로 모욕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도 모욕감을 느끼는 경우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모욕의 의도는 가능한 한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이것이 이성의 간지가 아닐까? 감추든, 드러내 놓든 인간을 모욕하는 사회는 품위있는 사회가 아니다. 어쩌다 목사·장로들의 품위가 이토록 땅으로 굴러떨어져 망신살을 자초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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