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린 시절 다녔던 교회는 이리성결교회입니다. 교회학교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학생회를 거치면서 선후배의 의리도 알고 선생님과 여러 장로님들의 많은 관심과 사랑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특히 안수기도를 해주시던 고 이진우 목사님은 천국가신 저의 조모님과 연배가 같으셨기에 목사님이시면서 저에게는 할아버지와 같으신 분이셨습니다.
성결교회 초창기 시절 노방 전도대에서 사용하셨던 녹슨 트럼펫은 목사님의 보물창고에 자리하고 있었고 언젠간 트럼펫을 배워 전도하는데 활용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재림신앙 때문에 일본순사에게 붙들려 옥고를 치루시며 해방이후 서울의 모 교회에서의 청빙을 마다하시고 은퇴하실 때까지 이리성결교회에서 목회하시고 은퇴하셨던 목사님에게 세례 받게 된 것도 저에게는 또한 큰 자부심이었습니다.
이리성결교회는 목수 일을 하셨던 저의 할아버님께서 교회건축 때 참여하신 교회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목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던 저는 학생회 시절 새벽기도회 새벽종을 치고 싶어 교회에서 수 킬로 떨어져 있던 집에서 자지 않고 교회관리 집사님 댁에서 자면서 ‘집사님. 내일 새벽종은 제가 칠께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그 때 이른 새벽 시간 새벽기도회를 알리는 종소리는 평소보다 더욱 은은하고 멀리 들려지는 듯 했습니다.
이제 세월은 흘렀습니다. 이리성결교회는 옛 이리성결교회 부활동산으로 부흥 이전하여 김중현 목사님께서 시무하고 계시고 교회 이름도 사랑의동산교회로 바꾸어 자연 속에서의 전원교회로 건축하고 아름다움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작년에 천국가신 어머님을 새로 조성된 교회 묘지에 안장하고서 다시 찾아본 이리성결교회 옛 터는 이리성수교회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리성결교회에서 ‘결’자만 빼고 ‘수’자를 넣어 이리성수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이름이 교회당 벽면에 새겨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야릇하며 깜짝 놀람과 입가에 웃음이 교차했습니다. 아마도 모름지기 교회당을 매입하고 이전해 온 교회에서 교회명을 정할 때 붉은 적벽돌 속에 화강석으로 새겨 넣은 교회명을 다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리성수교회라 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한번 들어가 볼까 하고 교회 문 앞에 선 저는 굳게 잠긴 교회당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주변을 돌며 교회직원이라도 만나면 고향교회 터에 온 자의 바람을 전하고 새벽기도회 시 앉았던 자리 주일이면 은혜 받던 자리에 앉자 기도하고서 훌쩍 지나온 30~40년의 세월을 회상해 보려는 저의 의지도 그냥 되돌려야 했습니다. 그때는 교회 문이 잠겨 아쉬움도 있었으나 차라리 그편이 더 나았다고 생각도 됩니다. 현실을 봄으로 무너질 옛 생각을 고귀하게 간직 하는 것이 더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때 그 종탑은 없고 그냥 터만 남아 있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너는 주일을 성수하는 사람이 되거라’고 해서 지어주신 그 이름대로 이제는 성결교회 목사가 된지 만 15년, 목회 만 22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치라 할 수 없고 제법 흰머리가 송골송골 자라나 목회한다고 자주 뵙지 못하는 연세 있으시나 갈렙 같으신 아버님을 뵙기가 민망한 자가 되었고 딸들의 남편감을 위해서 기도제목 하나가 더 는 막 50대 초입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햇살 안고 트럼펫 들고 교회 뒤편 나즈막한 동산에 올라가 트럼펫을 붑니다.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이 소리는 그 옛날 은은히 울려 퍼지던 새벽종소리처럼 구름타고 저 하늘로 올라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