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선교사의 외로운 투병 안타까움 더해
당뇨·신장병으로 투석 거동 불편 … 선교열정은 식지 않아
교단 선교국장·후배목회자 등 방문 … 따뜻한 위로 전해

지난 7월 10일 은퇴 선교사인 김광수 선교사의 집에서는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났다. 교단 선교국장 옥일환 목사와 신일수 목사(할렐루야교회), 선교사 출신 백광현 목사 부부, 송희천 선교사 부부가 김 선교사를 찾았기 때문이다. 선교사 은퇴 후에 병마와 싸우면서 외롭게 지내는 김 교사를 위로하기 위해 교단 선교국 차원에서 마련한 흐뭇한 자리였다.

오랜 만에 후배들의 방문을 받은 김 교사는 “이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해줘서 반갑다”면서 “선교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은퇴 후에도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고 후배들을 맞았다.
옥일환 국장은 “그동안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필리핀 선교사로 활동할 때처럼 교단 선교를 위해 기도해 달라”며 인사를 건넸다. 또 선교국에서 마련한 위로금도 전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은퇴선교사의 노고를 위로했다.

인도네시아 선교사 출신인 백광현 목사(새로남교회)는 “필리핀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서 지금은 많은 결실을 맺고 있다”며 “건강을 되찾아서 선교를 위해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신학교 시설 아파트 전도대에서 함께 활동했던 신일수 목사도 전도열정에 불탔던 젊은 시절을 함께 추억하면서 모처럼  외로운 감옥에서 김 선교사를 탈출시켜주었다.

김 선교사는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나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며 후배들의 칭찬에 손을 내저었지만 후배들이 잊지 않고 찾아준 것만 해도 반갑고 고맙다며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2002년 은퇴 후에 충남 서산에 머물고 있는 김 선교사는 교단의 1기 선교사로 꽤 유명한 선교사였다. 오엠에스 특수선교부장이었던 그는 1988년 10월 교단의 해외선교 초기에 필리핀에 파송돼 성결의 복음을 처음 심고 선교지를 개척한 공로가 크다. 현재의 필리핀국제성결대학의 전신인 필리핀신학교 설립과 필리핀 선교지 총회 구성 등이 김 선교사의 헌신으로 다져진 성과물이다. 그렇지만 김 선교사는 필리핀에서 여덟 차례 교통사고가 나고 건강문제로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선교사의 꿈을 접어야만했다. 

선교지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선교에만 투신하다가 몸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교통사고 휴우증과 당뇨로 인해 발가락을 절단하고 경추수술 등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또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급속도로 나빠져 지금은 일주일에 세 차례 투석을 받고 있는 상태다. 아내는  직장에 나가기 때문에 낮에는 김 선교사 혼자 남아 생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도 많았다. 특히 교단적인 후원과 관심이 끊어지면서 견디기 어려운 나날도 적지 않았다. 은퇴선교사에 대한 복지와 노후 대책이 전혀 없었던 것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은퇴 선교사 제도 복지문제
1988년부터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본 교단은 해외선교 30년을 넘기면서 김광수 선교사를 시작으로 은퇴선교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은퇴선교사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선교사 퇴직금 이외에는 주거와 생계 등 노후 삶을 위한 대책이 전무한 상태다. 65세 은퇴 후에도 선교지에서 사역은 계속할 수 있지만 김 목사처럼 질병으로 인해 더 이상 사역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정말 아무런 대책이 없다.

김광수 목사의 경우도 선교사 은퇴 후에 귀국했지만 살길이 막막했다. 한국에 거주할 집도 없고 자녀 교육비는 물론 병원비조차 마련 길이 없어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다행이 김 목사의 부인이 초등학교 교원으로 재임용돼 생계문제는 한숨 놓을 수 있었다.
“교사를 그만두고 필리핀으로 건너가 20년 가까이 교직을 떠나 있었지만 혼자서 복직 시험을 한 달 준비하더니 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그러나 김 목사의 경우처럼 부인이 새로운 직업을 갖는 것은 특별한 사례이다. 게다가 치료비가 워낙 비싸 여전히 궁핍한 생활이 이어지고 있어 은퇴 선교사에 대한 교단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날 김광수 선교사를 방문한 동료들도 선교사들이 노후 걱정이 없이 선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은퇴선교사에 대해 복지제도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은퇴 선교사를 힘들게 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로 목숨을 걸고 헌신했지만 은퇴 후에 관심도 줄고 지원도 끊어졌다.
“목숨 걸고 10여년 동안 헌신했지만 ‘선교사로 있었지’라는 정도로만 기억한다면 누가 선교사를 하겠습니까. 너무 무관심 한 것 같습니다.”

김광수 선교사도 은퇴 후에 주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관심 속에서 멀어지면서 점점 잊혀져 갔다. 병마와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현재는 교단에 어느 곳에서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것이 김 선교사 부부가 이겨내야 할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닥쳐와도 선교사로의 자부심으로 버텨왔는데, 관심이 줄어들면서 삶의 무게가 더 무거워 졌다.
그렇지만 김 목사는 건강문제로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꿈이 남아 있다.

은퇴선교사의 식지 않은 선교열정
하루종일 집에서 혼자 보내는 김 목사는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내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교단에서 1만명 이상 모이는 교회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해외선교지에서 못 다 이룬 꿈을 후배 선교사들이 대신 이뤄주기를 바라면서 기도로 성원하고 있다. 1988년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필리핀에 1000개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은퇴했기 때문에 후배 선교사들이 그 사역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김 선교사는 “나가지 않고, 보내지도 않고 후원도 안한다면 누가 선교사역을 감당하겠느냐”면서 “선교사는 개인이 아니라 나 대신 선교하는 우리 선교사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거동마저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선교를 위한 간절한 마음만큼은 현역시절보다 더 애틋한 모습을 보여서 위로차 갔던 사람들에 오히려 힘을 실어 주었다.
<후원계좌:국민은행 839-25-0006-901>
김광수 선교사 후원금이라고 표시 또는 송금 후 전화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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