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합니까? 이 질문에 ‘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제 갓 사랑에 빠진 청춘 남녀나 간절히 원하던 무엇인가를 얻은 사람, 자신을 억누르던 엄청난 속박과 부담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행복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단언하는 데 주저할 것입니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안과 권태, 조바심, 미안함 등이 행복한 순간 따위는 순식간에 지나가게 만듭니다.

얼마 전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주요 국가의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43개 조사 국가 가운데 68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간 쯤 되는 순위입니다. 세계 15위 안에 드는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행복감은 높지 않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오래된 법칙은 이번 조사에서도 맞았습니다. NEF가 행복지수의 조사 척도로 삼은 항목은 기대 수명과 자연과의 어울림, 노동시간과 공동체 의식, 의욕과 생활습관 등입니다. 우리나라는 기대 수명 분야에서는 상위권 점수를 받았지만 삶의 만족도와 친환경 측면 등에서는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특히 긴 근무시간과 공동체 의식의 부족, 수동적인 생활습관 등이 우리나라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1위는 중남미의 작은 나라 코스타리카였습니다. 경제력 등에서는 좋은 점수가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삶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코스타리카는 국토에서 석유가 발견돼도 이를 이용하지 않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같은 중남미 국가인 도미니카와 자메이카 과테말라도 2, 3, 4위를 차지했습니다. 낙천적인 성격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중남미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를 최대한 끌어올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아시아 국가로는 베트남이 5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고 중국이 20위 정도였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도 낮은 75위에 머물러 대체로 아시아 국가의 행복 순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어떤 이들은 동양인의 문화적 특성이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동양인들은 스스로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는 상호의존적인 관점을 가진 반면, 서양에서는 ‘나’의 본질을 내 안의 특성으로 바라보는 독립적인 관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지못미’라는 유행어가 떠돌고 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불행해졌는데, 그 불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나’지만 무엇인가 미안한 감정이 든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의 버지니아텍 총기 사건 때 범인이 한국인으로 알려지자 우리나라 대학의 총장들이 버지니아텍에 사과 편지를 보내고, 많은 미국 유학생들도 애도의 이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고맙기는 하지만 왜 당신이 사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답니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면 ‘자기(self)' 안에 행복이 들어설 공간은 그 만큼 좁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생활환경이나 사고의 관점으로 행복의 지수를 파악하는 것도 많은 부분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죄’의 문제에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 이후 사람들이 원초적으로 지고 있는 ‘죄성(罪性)’으로는 불행이 일상이고, 행복은 순간일 뿐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온 것은 인간이 진 죄 짐을 벗기기 위함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면 예수 안에 있으면 됩니다.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직도 다른 방법으로 행복을 찾고, 허망한 방법으로 행복의 척도를 잽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고 행복하게 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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