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교악이 의정부 사인(舍人)에 임명되었을 때 그 친구 한 사람이 농담하기를 “어찌하여 관직은 맑은데 사람은 고상하지 못하나?”하니 사람들이 웃었다. 교악이 말하기를 “말은 비록 우연히 농담에서 나온 것이나 고상하지 못하다는 말이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발설되었으니 외람되어 취임할 수 없다”하고 사직하였으니 옛사람의 염치가 이와 같았다. 이 관직은 극히 맑은 자리이기 때문에 수 십 년 동안 비워 두는 때도 많았다. (민병수·다시 보는 한국인의 지혜)

▨…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염치를 귀하게 알았다. 어느 동네에서든지 “그 사람은 염치없다”는 말이 퍼지면 그 동네에서는 더 이상 살수 없어 이사를 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네의 풍속도였다. 염치란 무엇인가? 결백하고 정직하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굳이 밝히지 않더라도 그리스도의 마음(고전 2:16)을 가졌다면 염치없는 자라는 말의 부끄러움을 능히 알 수 있으리라.

▨… 이교악의 의정부 사인 임명을 목사들과 성직에 직접적으로 비교하면 망발일까? 교단을 이끌어가는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는 목사님들을 향해서 “어찌 하여 자리는 성직인데 사람은 거룩하지 못하나?”라고 비아냥대는 소리를 내뱉는다면 하나님의 일이 뒤틀어질 뿐만 아니라 그 일을 맡는 분의 모양새도 꼴이 아닐 것이다.

▨… 우리는 주님의 좌우편에 앉을 수 있기를 부탁하던 제자의 마음이 또한 우리의 본성임을 부인할 수 있을까. 세속적인 즐거움, 물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을 버렸기에 명예에 대한 갈증은 역비례적으로 더 증가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최근에 이르러 성직자들의 자리 욕심은 더욱 볼썽 사나워지고 있다. 이웃 교단들의 교단장 싸움이 강 건너 불만은 아니다. 우리 발등에도 불이 떨어지고 있다.

▨… 교단 산하의 어느 위원회 위원장의 파송을 취소하고 소환한 사태에 대한 ‘뒷담화’가 심심찮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 뒷담화의 진실이 무엇이든, 또 그끝이 어떻게결정나든 그 위원회 자체가 성직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그 사건의 결말이 후안무치라는 용어와 연관되는 일 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모든 성결인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성직자에게 후안은 타락 못지 않은 꼴불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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