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6:1~4)
우리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느낌이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하고 또한 그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컴퓨터에 문서를 입력하면서 ‘드러나다’라는 말을 타이핑을 했는데 문서를 다 작성한 다음에 확인을 해보니 “드러내다”로 입력이 되어있었습니다. 아마도 컴퓨터 자판이 비슷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못 입력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연한 오타를 통해서 큰 교훈을 얻게 됐습니다.
‘드러나다’와 ‘드러내다‘라는 말은 글자만으로 보면 사소한 차이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뜻을 생각해 보면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드러내다’라는 말은 남에게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 발뒤꿈치를 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드러나다’는 것은 굳이 자신을 알리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잘 포장해서 알리고 선전하는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위해서 노력을 합니다. 어쩌면 이와 같이 자신의 장점을 잘 드러내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약점을 잘 가리는 것이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는 이치나 방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행위에 있어서만큼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했던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시하시거나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드러나지 않게 섬기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존재가 드러나도록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행한 일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과시하며 기도했던 바리새인의 기도는 무시하셨지만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를 했던 세리는 오히려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자는 소멸될 것이지만 감추려 하는 자는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기도하는 것도, 구제 하는 것도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신앙적인 행위들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게 행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실들이 드러나게 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도 모르게 하라’고 하실 정도로 특별히 선한 일을 할 때에는 은밀히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신자와 불신자 그리고 평신도와 목회자를 불문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드러낼 수 있을까 고심하며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 분주한 이때에 오늘 나의 모든 행위를 ‘나 자신이 드러내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해 주시기를 소망하고 또 그런 겸손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전도가 교회를 광고하는 것에 다름 아니고, 구제가 교회 홍보를 위한 수단처럼 되어 버린 것이 상식처럼 되어 버린 이때에 더 은밀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더 은밀하게 구제하고, 봉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므로 사람은 모르더라도 주님이 인정하시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