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어른인데 교단에서 어른노릇하려면 말 좀 그만하라고들 하지만…” 지난 총회에서 발언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던 대의원이 있었다. 말과 어른의 상관관계를 그 대의원이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말이 많은 것과 어른으로서의 품위는 역비례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성싶었다. 말이 많은 것은 소인배고 군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은총 가운데 가장 큰 은총이다 라고 말하면 망발일까. 태초에는 사람과 뱀이 대화를 나누었다는 기록이 성서에는 있다. 그 대화가 오늘 우리가 쓰는 말과 같은 것이었는지 혹은 어떤 눈빛의 대화나 우리가 모르는 다른 방식의 대화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가진 존재는 지구상에는 인간 밖에 없다고 한다.

▨… 말은 생각을 나누는 소통 수단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말은 자신을 치장하는 화장 수단이 되고 자신의 힘(똑똑함)을 드러내는 무기가 된다. 사기꾼일수록 말솜씨는 능란하고 말로 누군가의 폐부를 찌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무기를 가진 사람보다 무서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시저의 주검 앞에서 토해진 부르터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 그것은 로마대제국을 뒤흔들었다.

▨… 조선왕조 한문 4대가의 한 사람인 신흠은 다른 면으로 우리의 폐부를 찔렀다.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반드시 마땅히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마땅히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만 군자일 것이다. 군자의 침묵은 현묘한 하늘 같고 깊은 연못 같고 진흙으로 빚은 소상 같다. 군자의 말은 구슬 같고 혜초와 난초 같고 종과 북 같다”(옮긴이·정민)

▨… 말 잘하는 사람의 말은 부르터스나 안토니우스의 연설처럼 누가 옳은지 그른지 분간이 쉽지 않다. 예수쟁이 치고 말 못하는 사람 없다. 총회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총회는 예수 믿는 대의원들의 모임일 뿐 군자들의 모임은 아닌 것이다. 총회가 끝난 후에도 뒷말이 계속되는 것은 말 잘하는 분의 실력이 아직 다 발휘되지 못한 여운이 남아서일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