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대 웨슬리 회심기념 신학강좌, 박창훈 교수 발표

 

웨슬리가 올더스게이트 체험 이후 또 다른 체험을 통해 더 완성된 신학을 발전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난 5월 22일 성결인의 집 존 토마스홀에서 열린 2009년 웨슬리회심기념 신학강좌에서 박창훈 교수(서울신대 교회사)는 ‘오해와 설득, 올더스게이트 체험 이후의 발전과 그 의미’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 체험을 통해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증거’를 순간적으로 체험했지만 이후 패터레인 체험 등을 통해 부흥운동이 본격화되고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박 교수는 구원의 확신과 성령의 증거의 순간적인 체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패터레인 체험 등 또 다른 체험을 통해 올더스게이트 체험을 보완하고 성숙시켰다는 대안적 해석을 소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웨슬리는 1739년 1월 1일 새벽 페터레인에서 동료 60여명과 함께 기도하던 중에서 하나님의 능력. 즉 성령 충만을 집단적으로 체험했다. 박 교수는 이런 페터레인 체험 이후 웨슬리의 사역에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랐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군중집회와 옥외설교, 국교회 교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도활동 등 전도와 부흥운동이 본격화 되었다는 것이다. 또 평신도와 은사가 있는 여성들에게 설교를 허락하는 목회적 적응력이 나타났으며, 사람을 변화시키는 성령의 사역이 더욱 자주 발생한 것도 페터레인 체험 이후라는 것이다.
특히 이 때 칼빈주의적 신학에서 벗어나 웨슬리안적 신학적인 연대가 시작되었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야 말로 예정론이 잘못된 교리임을 지적하는 것이며, 그 증거가 바로 온전한 믿음의 ‘확신’이라고 천명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웨슬리는 올더게이트 체험 이후 구원의 확신을 순간적으로 얻었지만 그가 지니고 있었던 불완전한 요소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면서 “완전한 확신은 뒤이어서 오는 다른 차원의 은혜와 체험, 신학적 성찰을 필요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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