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조금 알쏭달쏭하기는 하다. 그러나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라고 믿어지게 만든다. “로스앤젤러스의 기독교 지도자. 그는 예수가 걸었던 길을 걸어가려고 무척 애를 쓰던 사람이었다. 심지어 물 위를 걷는 연습도 했다. 이랬던 그가 1999년 11월 24일 뜻밖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욕조에서 물 위를 걷는 연습을 하다가 비누를 밟고 미끄러지는 사고였다.”(마티아스 반 복셀·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사전)

▨… 아무래도 금년 총회는 시끄러울 모양이다. 지난 해에도 발목을 잡았던 장로 제적 문제가 대의원들을 들쑤시고 있고, 문준경 순교기념관 건립의 열기를 돋우려 준비하던 연극대본이 엉뚱한 곳에 불을 질렀다. 언론이 정도를 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물밑으로는 목사와 장로의 대립을 부추겨왔던 이들도 이미 뇌관 설치를 끝냈다고 한다.

▨… 대부분의 성결인들은 소문이 소문으로만 끝나기를 바라며 조마조마해 한다. 빈대는 잡아야겠지만 초가삼간마저 태우기를 주저 않는 이들의 똑똑함(?)이 성총회를 그들만의 이권쟁탈 자리로 전락시켜버리게 만들지는 않을까 겁부터 나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라는 발상은 사태를 극적으로 반전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독교적 가르침은 아니다. 그러나 초가삼간 태울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행태만은 반드시 분쇄되어져야 한다.

▨… 비리가 있다면 밝히고 불의가 있다면 응징해야 한다. 두루뭉실하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예’할 것엔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엔 아니오 해야 한다. 또한 나 못 먹는 밥에 재뿌리듯이 침뱉기를 일삼는 부류들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아니오 해야 한다. 인조 때 이시백은 금사낙양홍을 탐내는 왕에게, 왕이 인재는 구하지 않고 꽃을 구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그런 마음만이 총회를 성총회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정말 예수가 걸었던 길을 걸어가려고 하고 있는지 겸허한 마음으로 자문하자. 우리의 지금 모습이 비누 밟고 미끌어지는 모습은 아닌지 두려워해야 한다. 어떤 모습이 주의 제자다운 모습인지 주를 위해 나 자신은 무엇을 버리고 있는지를 내가 먼저 묻는다면 총회의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는가. 글을 쓰면서 낯 뜨거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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