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방 병원 근무하다 전역, 체부동교회 시무 중 목사안수

류재하 목사
안수훈 목사는 첫 임지로 강원도 김화지역의 제27육군병원에 파송되었으나 군복만 입고, 모자에 십자가만 붙이고 일했다. 그는 이듬해 서울 근교에 있는 육군 제36병원으로 전임되어, 부상병 위로와 기도에 힘쓰면서 주일 예배를 인도했다. 부상병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는 병원장 허락으로 간호장교와 간호하사관들로 합창단과 중창, 독창을 연습시켜 1951년 8월 어느 토요일 위문공연을 개최했다.

위문공연장에는 서울 체부동교회 전승순 장로가 참석했다가 위문공연을 지휘하는 안 군목을 발견하고 반겼다. 전 장로는 교역자가 없어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음을 호소하고 자기 교회에 가서 교회를 재건하자고 권했다. 안 군목은 그가 수시로 찾아와 계속 부탁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전역을 신청하고 1951년 9월 체부동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겨우 십여명으로 체부동교회 목회를 시작한 그는 열심히 전도했고, 피난에서 돌아 온 신자들이 늘어나자 폭탄으로 반쪽이 무너진 교회당을 수리했다. 그즈음 안 전도사는 이순녕 양과 만나 교제하다가 1952년에 한명우 목사의 주례로 무교동교회에서 결혼식을 했다.

안 전도사는 부산의 수정동교회에서 열린 제8회 교단총회에서 목사고시에 합격하여 4월 26일 목사안수를 받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 하나님의 종, 목사가 되겠다고 기도했던 꿈이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안 목사는 체부동교회에서 안정된 목회생활을 하다 8월말에 삶의 은인인 한명우 목사의 추천으로 청파동교회로 전임했다. 안 목사가 청파동교회에 시무한지 2년간 해방 후 접수한 일본 사찰교회를 팔고 갈월동에 대지를 매입하여 청파동교회를 새로 건축하고 더욱 부흥시켰다.

1958년 7월 어느 날 그는 동기생 박관빈 목사의 요청으로 서울하와이교회를 맡아 을지로의 한 여관방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하와이 시절이 그리워 한국에 기념교회를 짓기 위해 목사를 찾았고 박관빈 목사의 소개로 안 목사가 예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도와준다면 최고의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꿈도 있었다,

그가 을지로에서 목회를 시작한지 얼마 후 당시 서울시장이 대통령의 특명이라며 청와대 근처 옥인동산 1번지 녹지대 3500평의 등기등본을 주었다. 또 며칠 후 청와대의 지시로 육군 공병감을 불러 “대통령께서 원하시는 교회를 하나 지어드려라”고 했다고 그에게 알려왔다.

일주일 후, 공병대 2대 중대 병력이 동원 되어, 숲을 파헤치고 옥인동산 1번지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만들고 중장비로 산중턱을 깎아 내리는 대지작업을 했다. 이후 기초공사를 한 후 벽돌을 쌓고 지붕을 얹더니 마지막 내부공사까지 깔끔하게 단장했다. 공사 시작한지 3개월 만에 돈 한 푼 없이 300평이나 되는 큰 교회를 아름답게 지어 놓았다. 그는 권력의 힘이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

1960년에 4.19 학생의거가 일어나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이 무너졌다. 그 틈에 진보적인 K교단에서 ‘서울하와이교회’가 이승만이 세운 교회라며 성토하고 주일마다 교회가 시끄러워 예배드릴 수 없자 안 목사는 도저히 교회 같지 않아 사표를 제출해 버렸다.

며칠 후 미국에서 온 송헌영 박사가 찾아왔다. 송 박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독립운동 할 때 세운 교회의 원로목사로 한국에 올 때마다 서울하와이교회에 출석해 안 목사와 친분을 쌓은 인연이 있다. 송 박사는 안 목사에게 미국에 가서 함께 일하자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미국에서 펼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승낙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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