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옹호는 곧 믿음의 위기”

④ 마태복음 5장, 19장, 요한복음 13장 : 동성애 옹호자들은 신약성경이 동성애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를 금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마 5:31~32; 19:1-10) 그렇지 않다! 명확한 동성애 금지 본문들이 있다. 또한, 동성애 옹호자들은 율법 준수보다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므로 동성애를 언급한 구약의 율법을 신약성경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구약을 인정하셨고, 또 율법을 폐기하시지도 않았고 오히려 완성하셨다.

어떤 동성애 옹호자는 요한복음 13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랑 받는 제자”(요 13:21~26)란 표현은 예수와의 동성애 관계를 뜻하고, 요한복음 19장에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그 ‘사랑받는 제자’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한 것(요 19:26~27)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마 5:28)고 말씀하셔서 사람의 내면에 있는 무절제한 정욕(음욕, 자기만족의 탐욕)을 죄의 동인으로 지적하셨고, 요한복음 8장에서 보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발각된 여인을 용서하시되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3~11)고 권고한 사실로 보아, 예수님이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인 죄를 긍정하신 것이 아니라 행위에 앞서서 내면의 방탕한 음욕(무절제한 정욕의 동기)을 정죄하셨다.

⑤ 로마서 1장 26~27절 : 동성애 옹호자들은 로마서 1장 26~27절을 신약의 유일한 동성애 구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동성애는 선하거나 악하지도 않은 윤리적 가치중립이며, 이 본문은 모종의 이성 간의 성행위를 지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부끄러운 욕심”(26절)을 따라 “서로를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27절),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한다”(27절)고 동성애를 그릇된 것으로 지적했다.

더구나 성경은 동성애가 타고난 선천적인 성적 지향이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본문에서 동성애를 “순리대로 쓸 것을 역리로 쓰는 것”(롬 1:27)으로 묘사하므로 동성애를 비본성적 선택행위로 규정한다. 따라서 동성애는 인류 최초의 죄의 영향으로 인해 초래된 성적 본성의 타락과 왜곡으로 인해 발생하는 탐욕적 행위이다.

⑥ 고린도전서 6장, 디모데전서 1장 :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는 동성애자들은 천국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고, 디모데전서 1장 9~10절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남색하는 자’들을 명백히 정죄하셨다.

특히 이 본문들에 사용된 용어인 ‘말라코이’(탐색하는 자란 수동적 역할, 곧 여성역할)나 ‘아르제노코타이’(남색하는 자란 능동적 역할, 곧 남성역할)는 모두 ‘성도착자’(RSV)로 번역되어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신성한 결혼의 범주 안에서 성관계를 허용한 것이지 성행위의 자유를 합법화하려는 동성애와 동성결혼이 허용될 여지는 전혀 없다.(마 19:5)

따라서 동성애 옹호자들의 성경적 근거 제시와 해석은 동성애자들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각자의 주장이 진리라는 포스트모던적 성소수자 인권 논리를 앞세우고, 전통적 성경해석도 논란 중에 있다는 말로 현실상황을 왜곡하는 것이다. 특히 동성애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 가며, 문화비평적 성서해석을 도구로 활용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본문만 부각하는 왜곡된 본문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동성애 옹호의 분위기는 곧 믿음의 위기를 말한다. 하나님인가 아니면 세상인가? 그리스도의 주 되심에 굴복할 것인가? 아니면 지배문화의 압력에 굴복할 것인가? 하나님은 하나의 길을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스토트는 레즈비언과 게이 기독교인 단체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이라고 보았다. 동성애 성향의 핵심에는 “깊은 외로움, 상호적 사랑에 대한 본능적 갈증, 정체성의 혼란, 완전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

또한 동성애 행위에는 따뜻한 육체적 관계냐, 아니면 외롭게 격리되는 고통이냐의 양자택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길도 있다.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는 동성애자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의 세 관점에서 조언을 남긴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의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성향이란 날 때부터 어떠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둘째, 소망은 동성애적 성향에서 벗어나고 치유 혹은 치료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비록 완벽한 변화와 치유가 아니라 해도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완전한 모습으로 완성될 것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은 교회가 사랑으로 용납하고 서로를 지지해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용납은 묵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도덕적 기준을 세우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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