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덕준 목사
요즈음 서울특별시장의 돌발적인 극단적 선택에 대한 논란으로 유족과 서울시는 물론 국회와 여성단체 그리고 전 국민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율 세계 1위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6.25 전란을 겪고 폐허가 되었던 절망의 나라가 경제발전과 정치 민주화를 이룩하고, 세계 경제 10대 강국을 이루었으나, 삶의 만족도와 행복도는 떨어지고, 부끄럽게도 자살율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자살을 하니까 뒤따라 청소년들이 쉽게 자살을 한다. 국회의원, 장관, 기업체 사장과 전직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의 자살행위는 온 나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자살충동을 일으켜 그 숫자를 확산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더욱이 자살자를 추모한다는 명분으로 그의 행적을 미화시킴으로, 생명을 경시하고, 또 다른 제 2의 자살자를 만들어내는 불행을 보게 되는게 현실이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선물이고, 최고의 축복이다. 사람의 가치는 ‘생명을 가진 존재로 살아있음에 있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사람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요, 존엄인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출 20:13)고 하셨다. 살인이란, 남의 생명을 해(害)하는 것과 함께 자기의 생명을 해치는 행위도 포함한다. 생명은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자기 목숨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어느누구에게도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거나 해할 자유와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자살은 어떤 이유와 명분으로도 합리화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할 것이다.

유명인사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면,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의 죽음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가해자를 만들어 공격을 한다. 그리고 그의 사상이나 이념행적을 미화시키며 영웅 만들기 작업을 한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에 대해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반발하며 이를 사자명예훼손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의 공적이란 내세워 자랑하고 기념할 것이 못 된다. 이는 사람에게 목숨보다 귀한 것이 없음이며, 그는 스스로 자기 인생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한 여정이다. 인생이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와 싸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지식을 쌓고 재물을 얻고 지위와 명예와 권력까지 소유하고자 몸부림을 치며 살아내는 것이 쉬운 일인가(?)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모르고 허상을 쫓아가다가, 수십 년 쌓아올린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에 느낄 절망감이 너무 커서, 결국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인생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아니한가.

예수님은 사람의 목숨을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으로 가르치셨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 16:26)

사람의 발에 짓밟히는 잡초처럼 살든, 화려한 장미꽃처럼 살든지, 산골이든 도시이든, 재물이 많든 적든, 명예가 있든 없든, 존귀한 생명을 가지고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땀 흘리면서 즐겁게 살다갔다면 그는 인생에 성공자요. 아무리 많은 부를 얻고 명예와 권력을 가졌어도, 자기의 생을 도중에 포기하는 자살로 마감했다면, 그는 곧 인생의 실패자이다. 그러므로 자살자의 공과는 논할 대상이 아니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음으로 행복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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