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23:17~18, 29~30)

전에 부교역자로 섬기든 교회는 장례식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바쁜 중에도 꼭 장례예배 중 한번을 집례하셨습니다. 담임목사님이 가시는 날에는 거의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부 교역자의 중요한 사명중 하나는 ‘조기’를 챙겨서 잘 설치하고 마치면 수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새로 들어 온 남자 목사님들이 이 일을 담당 하였습니다. 장례식이 많아 중복되는 경우가 있어 교회 사무실에는 ‘조기’ 상자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장례가 생겨 급히 장례식장으로 가게 되었고 담당목사님께 사무실에서 ‘조기’를 잘 챙겨 오라고 하였습니다. 장례식장에 들어가 예배를 드리기 전 담당 목사님이 ‘조기’를 꺼내 설치하다가 갑자기 놀라며 다시 가방에 접어 넣는 것이었습니다.

‘조기’ 없이 예배를 드린 후 이유를 물었습니다. 너무 바빠 급히 사무실에서 아무 상자나 챙겨 나왔는데 와서 열어 보니 ‘우승’이라 쓰인 우승기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장례식에는 ‘조기’가 아닌 ‘우승기’가 더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요시야와 같은 왕이 없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발견하고 연구하여 언약에 따라 유월절을 지킨 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사시대 이후 처음이라 성경은 표현합니다. 히스기야도 유월절을 지켰지만 말씀대로 따라하진 못 했습니다. 또한 그는 우상을 모두 제거했습니다. 유다의 우상숭배를 없앨 뿐만 아니라 북 왕국 이스라엘의 벧엘까지 가서 여로보함의 제단을 완전히 파괴하였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아의 죽음은 너무 허망했습니다. 유다 영토를 지키려다 전쟁중에 므깃도에서 젊은 나이에 죽은 것입니다.

또 비슷한 죽음이 있습니다. 17절에 요시야가 사마리아에 세워진 비석을 보고 묻습니다. 그것은 300년전 유다로 부터 올라온 이름 모를 선지자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 여로보함 앞에서 산당을 부수는 대단한 이적을 보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후에 ‘요시아’라는 왕이 나타나서 이 모든 것은 없앨 것이라는 놀라운 예언을 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 또한 허망했습니다.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 졸지에 사자에게 물려 객지에서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주검이 된 것입니다. 이름 없는 선지자와 요시야의 결말을 보며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렇게 살았는데 좋은 결말을 얻지 못한 것 같아서요.

누가 잘 섬겨서 어떤 복을 받고 이런저런 간증을 했다는 긍정적인 소리만이 난무하는 자리에 오늘 이 두 죽음은 허망하다 못 해 저주스럽기까지 한 것 같습니다. 과연 이 두 사람의 생애가 승리라 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저는 오늘 제목처럼 확실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승리는 없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 집에 나 쉬고 싶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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