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중에서 드릴지니라

이성훈 목사
모든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레위기는 ‘책 중의 책’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대한 예표로 가득합니다.

유대인 자녀들은 만 12세가 될 때까지 모세오경을 암송하는데, 그 중에서 레위기는 암송 순서에서 첫 번째에 해당합니다. 사실 레위기의 이해는 ‘사복음서’는 물론 ‘히브리서’와 ‘로마서’의 해석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무엇보다도 레위기 하면 제사 제도를 빼 놓을 수 없는데 사실 한 번도 체험해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는 희생 제사가 매우 낯설고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에게 제사제도는 매우 실질적임과 동시에 그들의 일상 삶과 직결되었습니다. 이를테면, 희생제는 아무 곳에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반드시 회막(히.오헬 모에드)에서 드려야 하는 공간적인 제약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회막(히.오헬 모에드)이 시내산 아래에 세워진 이래(출 40:2, 17), 이 회막은 실로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옮겨졌습니다. 제사는 오직 이 곳에서만 드려야 했습니다.

현대와 같이 이동 수단이 편리한 시대에야 희생 제사를 어디서 드리든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마는 문제는 지금으로부터 수천년 전, 일정하게 정해진 장소에서만 제사를 드리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근처에 거주하는 베냐민지파도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 회막에서 멀리 떨어진 단 지파나 혹은 스불론 지파와 같은 경우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차로 이동을 해도 최소한 약 5시간 이상 잡아야 하는 거리였는데, 도보로 간다면 약 60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니 서울에서 부산 거리정도 되는 지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에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는 동물은 사냥을 ‘가축 중에서 소나 양’(레 1:2)을 드려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가축’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의 ‘베헤마’는 집에서 길리운 동물을 의미하는데, 당연히 사냥이나 야생에서 자란 동물은 제외되었습니다.

그런데 희생제사를 위해서 여행을 할 때 가축을 대동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긴 여행을 하다가 희생제물로 쓰여질 동물에 혹여라도 흠이 발생할 경우, 집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제물을 골라야 했기 때문에 여분의 짐승 4~5마리 정도는 더 대동해야 했습니다.

즉 그들의 제사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집에서 제물을 고르는 일’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보는 우리로 하여금 “왜 하나님께서 아벨과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다양한 각도에서 추측하게 합니다.

종종 우리는 “예배 드린다”는 말을 그저 “교회에 출석했다”는 표현을 갈음하는 정도로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그녀의 ‘예배한다’는 말은 그저 ‘특정한 장소’에 간다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한다’는 말은 ‘예배하는 자’가 ‘예배의 대상’을 만나는 사건으로 교정해 주셨습니다. 교회 부흥의 시대에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예배에 눈물과 감격, 치유, 회심, 초청, 결단이었습니다. 매 예배시간 시간 시간마다 이런 은혜의 역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원을 품고 기도하게 하셨으니 내 사랑하는 주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에 반드시 이러한 예배 회복의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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