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모두 세상이 날 몰라준다고 말하는데, 저 또한 이 같은 탄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그 포부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탄식하나, 저는 제 공소함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탄식합니다.”(한글 역, 정민) 퇴계는 제자 이담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상이 자기의 포부를 알아주지 않음을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과 거칠음을 세상이 모르고 있다고 탄식하였다.

▨… 훗날, 금정역 찰방으로 좌천된 다산이 읽을 만한 책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을 때 퇴계의 편지들을 엮은 퇴계집을 얻었다. 다산은 새벽에 세수를 한 다음 퇴계의 편지를 한 통씩 읽었다. 이담에게 보낸 편지글을 읽은 다산은 “겸손한 군자이시다. 선생이 아니면 누구를 따르겠는가!”라며 존경하는 마음을 「도산사숙록」에 밝혔다.(금장태, 다산은 퇴계를어떻게 극복했는가.)

▨… 퇴계 같은 분이 자신이 얻은 것을 허명이라고 부끄러워한다면 오늘의 사람들은 다산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진땀을 흘리고 송구스러워할까. 오늘을 TMI(too much information)시대로 규정하며 어떤 방법으로든 자신을 피아르(P.R.)해야만 살아남을수 있다는 생존의 법칙에 교회까지 함몰되어 목회자도 자기선전을 위해 꽃단장, 분단장하는 현실을 뉘라서 부정할 수 있는가.

▨… 그러나 한국성결신문에 발표된 ‘작은교회 목회수기’를 보면, 개척교회를 붙들고 그 교회를 자립교회로 일으켜 세우려는 목회자들은 땀 흘리는 차원의 분투가 아니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의로 온몸을 내던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제가 여기 있나이다” 답하였으므로 어떤 고통이든 감수해야 한다지만, 가족이 감당해야하는 어려움으로 피눈물을 삼키는 목사들의 모습은, 차라리 허명이라도 얻어 벗어날 길이 있다면 그렇게 하도록 권면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작은교회 목회수기 공모 주관자의 입장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응모자 모두에게 최우수상을 수여하고 싶지 않았을까. 언제 끝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조차 예측되지 않는 개척목회를 위해서 자신에게 가장 귀중한 가족의 고통까지도 감수하는 그 믿음에 무슨 등수가 있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당선작이고 최우수상 수상작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행여라도 허명을 노리는 수기응모자가 있을까 저어하는 성결인이 있다면 곧 출간될 「작은교회 목회수기집」을 주목하시라. 우리교단이 왜 성결교회인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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