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대 전주에는 전국의 도청 소재지 중 유일하게 성결교회가 없었다. 그러다 광복 이후 김신환 유흥만 등의 기도로 전주에 성결교회가 세워졌다.

지난 5월 27일 제114년차 교단총회에서 한기채 목사(중앙교회)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로써 전주교회는 교단 총회장을 여섯 명이나 배출했다는 경사를 맞았다. 전주교회 출신이거나 사역을 하셨던 목사님들 중 총회장이 되신 분이 6명이라는 의미다.

첫 번째는 전주교회 초대 담임목사였던 오영필 목사이다. 오영필 목사는 제13대와 제18대 총회장을 역임했다. 두 번째는 이대준 목사로 제31대 총회장이었으며, 세 번째는 김필수 목사로 제57대 총회장을 지냈다. 네 번째는 제58대였던 이용규 목사, 다섯 번째는 제65대 총회장을 지낸 원팔연 목사, 여섯 번째가 바로 제74대 총회장 한기채 목사이다. 이렇게 전주교회는 여성 명의 총회장을 배출해 낸 기쁨과 은혜를 맛보고 있다. 그러나 더욱 감격스러운 것은 전주교회의 역사가 한 절간의 터 위에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1940년대 전국에 있는 도청 소재지 중 성결교회가 없는 곳은 전주뿐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성도들은 전주에도 성결교회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며 이 기도의 응답으로 전주교회가 시작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성결교회의 교역자들과 성도들은 자유를 찾게 되었고, 당시 김신환 집사 역시 광복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께서 전주에 교회를 세울 기회를 주셨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후 삼례교회에 다던 친구 유흥만 집사와 전주에 성결교회를 세우기로 뜻을 정하고 함께 기도하였다.

이후 유흥만 집사는 전주 거리를 거닐다가 일본인의 절 쌍전사가 교회 터로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해 쌍전사를 무턱대고 찾아갔다. 유 집사는 주지스님에게 정중히 인사한 후 “나는 기독교 신자인데 쌍전사에 교회를 세우고 싶어 주지스님의 허락을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에 주지스님은 “나는 망국인으로서 무슨 힘이 있으며 무슨 말을 할 자격이 있겠는가?”라고 되묻고 “그러나 같은 종교인으로 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좋게 생각한다”며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유흥만 집사가 다시 한번 약속을 확인하니 주지스님은 묵을 꺼내어 고급 한지에 붓으로 “교회를 세우는 조건으로 쌍전사 절을 유흥만 씨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낙관까지 찍어서 정중하게 내주었다.

1945년 12월 15일 유흥만 정채모 서귀봉 김관영 정상균 김계순 씨 등 성도들이 뜻을 모아 중앙동 18번지 유흥만 집사(전 미성대 총장 유종일 목사 부친) 자택에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이후 1945년 12월 31일 초대 담임목사였던 오영필 목사가 부임하고 1946년 1월 5일 전주시 고사동 1가 441번지였던 일본 사원을 불하를 받으며 성결교회 간판을 내어걸고 본격적인 전주교회가 시작되었다. 이후 전주교회는 전주의 장자교회로 지역은 물론이고 호남 지역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곳으로 성장하였다.

한 교회에서 6명의 총회장을 배출한 것은 분명히 교회의 자랑이자 축복이요 뿌듯한 일이다. 더구나 교회의 첫 시작이 쌍전사라는 절터 위에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며 이미 총회장을 역임하신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칭찬을 전하며 한기채 총회장의 사역도 큰 기대를 하며 바라볼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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