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신 장로
18세기, 미국에 한 소년이 있었는데 아마 호루라기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아니했던지 그는 호루라기를 그렇게 갖고 싶어 했다.

그는 형님들이 많이 있었던 막내였다. 설날에 부모 형제로부터 많은 돈을 선물로 받았던 그는 얼른 가게로 달려가서 그 돈을 전부 주고 호루라기 하나를 들고 와서 동네방네 불고 다녔다. 모든 식구들이 깜짝 놀라서 그에게 물었다. “너, 그거 얼마주고 샀느냐?” “오늘 선물로 받은 돈 전부주고 샀어요!” 하니 형님들이 “그 돈 가지고 호루라기를 천개는 살 수 있는데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했느냐? 왜 값을 묻지도 않았니?” 했다. 그 소년의 이름은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이었다.

그 사실을 안 그는 아연실색을 했고  그는 “Too much for a whistle!”(호루라기 하나를 너무 비싸게 샀다.)이란 말을 했었다.

이 호루라기 사건 후 벤자민은 일생동안 이것을 큰 교훈으로 삼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Too much for a whistle!”은 그에게 늘 정확한 인생의 길을 가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하였다.

그는 당시로는 장수하여 84세까지 살았는데 미국의 정치가요 과학자였고, 독립선언서의 기초위원을 지냈으며 피뢰침도 발견했다. 그리고 20년간이나 영국대사로 활동했고, 노예 폐지론도 주장한 훌륭한 크리스천이었다.

그가 영국에 가기 전 자기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했는데 그의 설교에 많은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영국 런던에 가 있는 동안 서점에 들러 우연히 어느 목사님의 설교집을 뒤적거려 보는데, 뜻밖에도 그 젊은 목사가 한 설교가 전부 그 책에 있었다. 거기서 그는 그의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서투른 설교보다는 남의 설교로라도 은혜를 끼치는 것이 더 좋다”고 말이다.

나는 이와 관련하여 이실직고 할 일이 있다. 나는 해방 후 6년제 중학교에 다녔는데 1951년에 졸업하게 되었다. 미션스쿨이어서 날마다 ‘경건회’라는 예배를 드렸다. 교목으로는 계화삼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졸업반 학생들에게 설교를 시키셨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신학교 졸업생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설교를 작성할 수 있었겠는가! 할 수 없이 나는 일본의 어느 목사님이 펴낸 설교집 ‘희망의 기독교’에서 ‘헌신의 뜻’을 번역하여 설교했는데 계 목사님은 “학생 설교에 큰 발전이 있어 축하한다”고 하셨다.

우리교회 김세진 목사님이 지금부터 약 10년 전, 장로들은 사순절 기간 중 토요일마다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라고 말씀하셔서 난감하였다. 다시 그 일본 목사님의 설교집 ‘소망의 기독교’에서 하나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교단에서 펴낸 사순절 묵상집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참고하라고 하셔서 참으로 감사했다.

서울의 어느 유명한 A목사님이 부산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마침 주일이어서 호텔에서 가까운 교회의 예배에 참석했는데 그 교회 목회자는 A목사님의 설교집에서 설교 하나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표절 설교를 하더라는 것이다. A목사는 너무나 놀랐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판단은 어떻게 나오실지 알 수 없다. 예수님이 벤자민 프랭클린처럼 자기의 형편없는 설교보다는 남의 설교를 가지고 은혜를 끼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실까, 아니면 표절자라고 책망하실까! 다행히 목회자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성서과정에 따른 예배가 교단적으로 권장된다고 하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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