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19~20)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되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변화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시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시기 위해 주신 고난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런 긴박한 시절의 예배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특별한 행사나 의미보다도 그저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하게 됩니다. 그게 진정한 예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목적대로 멋지게 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 주신 은혜를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호수가 물을 품었다가 내보내듯이 은혜가 우리 안에서 차고 넘치면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은혜를 잘 담아서 차고 넘치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렇게 축복을 담아 가두는 댐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축복을 잘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인생을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주범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던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너무나도 평범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최선을 다해서 수행하는 근면성실한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그는 히틀러처럼 유대인에 대한 광기 어린 증오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가 준 과업을 그저 열심히 해냈을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저 열심히만 살면 됐지요 뭐’ 하는 게 절대로 옳은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심히는 했는데 그 열매가 버려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촬영할 때 버려지는 장면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넌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기생충의 대사처럼 그에게는 항상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을 봉테일이라고 부른다지요. 하물며 우리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께 우리를 위한 세밀한 계획이 없으실까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은 인생을 그저 열심히만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맞는지를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가는 길에 대해서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그저 악착같이 열심히만 살다가 의미도 없이 죽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핏값으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목적은 분명히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후회 없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이며,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과 핏값으로 산 것이기에 우리 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대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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