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세상과 하나가 되고자 하신 방법

하도균 교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사하고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과 하나가 되기 위한 예수님의 마지막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이러한 근본적인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죄 때문에 생겨난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그 고통과 눈물을 알고 함께하며 사랑으로 어루만져주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아픔과 고통, 그리고 눈물과 어려움을 밖으로 표현해 낼 수 있으며 예수께 진정으로 치유와 회복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치유와 회복은 근본적인 해결입니다. 예수께서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드러내며 전인적인 의지와 요청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참 변화되기 힘들다’라는 말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전인적으로 예수께 의지하고 요청하는 일이 어렵기는 하지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감동이 있어서 마음을 얻어 하나가 되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감동을 준 사람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워하고, 때로는 일부러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우리 마음에 터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상태를 알고 계셨기에, 일회적인 치유와 회복보다는 우리와 하나가 되셔서 우리의 아픔에 동참하시고 함께 우시며 우리와 하나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3절을 보면, 메시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실 궁극적인 고난을 세 단어로 표현하였습니다. 왜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를 예언하는 성경의 중요한 장에서 메시아의 이러한 부분을 강조하며 서술하고 있는 것일까요?

메시아는 멸시와 간고를 겪으시며 질고를 잘 알고 계셔서 세상의 모든 사람과 하나가 되셨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눈물을 아시고, 우리의 아픔을 아시며,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도 잘 알고 계시는 진정한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멸시’와 ‘간고’와 ‘질고’를 겪어보고 아는 것이 왜 세상과 하나가 되는 방법입니까? 그것은 세상 가운데서 멸시당하고 간고를 겪으며 질고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조금만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아픔과 슬픔, 그리고 눈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눈물도 알지 못하고 아픔과 연약함을 함께하지 못하는 메시아가 이 땅을 구원하고 변화시킬 진정한 메시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죄 때문에 인간이 감당해야 할 모든 아픔과 상처에 동감하시고 그 아픔과 상처를 직접 겪으시며 인간과 하나가 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셨습니다. 실제로 사람을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은 이러한 상처와 아픔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제자로 만들어가시는 과정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하였던 것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는 일”(막3:14)이었습니다. 훈련이 중요하지만, 그 훈련을 위해서 함께 중요하게 병행해야 할 일이 그들과 삶을 나누시면서 하나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세상의 아픔을 알고 그 아픔에 동참해보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우실 수 있습니까? 우리의 연약함과 질병을 아시고 체휼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은 세상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이 되십니까? 이 땅에서 가장 낮은 자로서 멸시와 천대를 받아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 중에 하나도, 이 세상의 어떠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품으시며 그들과 하나가 되셔서 구원하시고 회복하시기 위하여 가장 낮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셔서 우리를 회복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감당하신 궁극적인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음까지도 극복하고,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도 다가가셔서 부활의 소망이 있음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희미해져 가는 이 진리를 붙잡고 발전시켜 가야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세상과 하나가 되어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눠줄 수 있을 때 세상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과 하나가 되는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그들을 궁극적으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복음을 나눠주는 일이 부실해 진다면 형식만 남은 기독교가 될 것입니다.

어느 것에 있어서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담겨있는 메시지 가운데 한국교회가 잊어가고 있는, 세상과 하나가 되는 일에 다시금 주력할 수 있다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당하고 있는 사회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