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36:16)

엘리후는 욥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에서 제일 나이가 젊습니다. 그는 연장자인 욥과 세 친구들이 공방전을 주고 받을 때 뒤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모두 말을 마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세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욥이 저지른 죄 때문이라고 시종일관 몰아부쳤습니다. 욥의 현실을 과거적으로 해석하는 세 친구들의 말은 욥의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반면에 젊은 엘리후는 욥의 고통스런 현실을 미래적으로 해석합니다. “당신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당신이 저지른 죄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한 기이한 계획이 있기에 이 고난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당신의 고난은 징계가 아니라 은총입니다.”

기성세대는 살아오면서 맞춰진 틀이 있습니다. 틀에서 벗어나면 불편해합니다. 반면에 신세대는 틀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따라서 기성세대의 화법은 다분히 과거적인데 비해 신세대의 화법은 미래적입니다.
엘리후는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엘리후의 이 말은 욥에게 무더운 한 여름에 얼음냉수 같았을 겁니다. 지금까지 욥의 입장을 이렇게 해석해준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지금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하여 광범위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필 지금 우리에게 이런 혼돈을 주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교회들을 좁지 않고 넉넉한 영역으로 옮기시려고 하신다는 생각이 안드십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예배당 건물 중심의 신앙생활, 주일 중심의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예배당 건물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일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진된 제4차 산업시대는 시공간이 어마어마하게 확장된 시대가 될 것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교회 역시 비상한 변화를 요청받고 있습니다. 변해야 할 것은 과감하게 시도해야 하며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반드시 사수해야 합니다. 변해야 할 것은 형식이며,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본질입니다.

우리 주님은 무한한 공간 속에 거하시며 영원한 시간 속에 거하십니다. 주님은 주의 자녀된 우리의 영역을 확장시키시길 원하십니다. 주님이 예비하신 넓고 광대한 영역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

주님의 성대한 만찬에 우리 모두 참여해야겠습니다. 온 세대가 성령으로 하나되어 지금의 혼란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어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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