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 : 공정에서 정의까지

재난이 주는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감염, 치료, 전염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답답함,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속성 때문에 느끼는 막막함 등 다양한 고통이 차별 없이 다가오기에 재난은 보편적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재난의 고통을 겪는 일은 차별적이다. 보편적인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저마다 경험하는 고통의 종류와 강도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감염위험은 보편적이지만 경제적 빈곤, 심리적 불안정 상태, 의료혜택의 사각지에 놓인 실업자, 일용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근로자, 고령자, 기저 질환자 등이 겪는 고통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환대(Hospitality)는 타인에 대한 도덕적 실천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신학, 철학, 인류학, 사회학, 정치학 등 모든 학문적 연구에서 환대는 도움을 구하는 손님과 도와줄 의지와 역량이 있는 주인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주로 연구되었다. 이런 접근에서는 주인의 성품이나 종교적 신념 등이 환대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위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환대는 주인의 관점으로만 이해하고 실행을 기대하였다, 환대가 타인에 대한 주인의 도덕적 실천에 머문다면 이는 과연 타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주인을 위한 것인가? 초기에는 분명 주인의 도덕성을 기반으로 하여 나그네를 집에 재워주고 음식을 대접하는 등 손님의 필요를 채워주는 ‘자선’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환대는 ‘보호’의 형태로, 또한 대량 실업으로 빈곤에 허덕이던 시기에는 개인이 베풀 수 있는 이상의 ‘제도화된 보살핌’으로, 세계화로 국경을 넘는 이동이 자유로워진 최근에는 호텔, 음식점 등을 제공하는 ‘산업’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사실 호스텔(hostel)과 호텔(hotel), 병원(hospital)과 보호소(hospice)의 어원은 환대(hospitality)에서 비롯한 것이다.

환대는 구체적인 상황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러기에 기독교 환대는 성서에 기초를 두고 있는 신학적 윤리이며 신앙에서 비롯된 도덕적 실천이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먼저 찾아오셨기에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는 믿음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은혜에 빚진 자임을 깨닫고 타인에게 조건 없이 먼저 다가갈 것을 권고하는 것에서 기독교 환대 전통은 출발한다.

환대는 공정을 기초로 하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약자들을 먼저 찾아가 끌어안는 방식으로 발전한다. 긍휼한 눈으로 타인을 바라보되 업신 여기지 않고, 보살피고자 하는 손으로 필요를 채워주되 자랑하지 않으며,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하되 나의 의를 드러내지 않는 정의로운 실천이어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상에서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의 양극을 극명하게 드러나게 하였다. 질병의 위험에 동일하게 노출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로 인한 고통의 정도가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 모두에게 공정하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은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욱 간절하고 소중하지만 현실적인 위기 앞에서 그들은 여전히 위태롭기만 하다.

여기에서 교회의 역할이 필요한 영역을 발견한다. 교회의 관심은 먼저 누군가의 도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들을 향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만들고, 자신의 몫으로 구입한 마스크를 아껴 지역사회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나눠주며, 공적 예배 논란보다 방역수칙을 지키며 작은교회를 지원하고 오히려 사각지대를 찾아다니며 방역에 헌신하는 사람, 당연하게 받은 지원금의 일부 또는 전부에 해당하는 만큼을 헌금 또는 기부금으로 교회와 사회에 환원하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공정을 넘어 정의로운 환대를 실천하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자들이다.

동정 대신 존중으로, 부끄러움 대신 당당함을 선물하여 생명을 소생시키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 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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