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가차없이 까밝힌 작가로 도스토예프스키를 손꼽는다면,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은 못마땅해할까? 스타브로긴이나 스비드리가이로프 그리고 카라마조프(표트르)를 통해서 냉혹하게 까밝힌 인간의 모습은 너무도 비루하고, 비열하고, 잔악해서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도록 독자들을 윽박지른다. 그 윽박지름은 인간에게 과연 회개를 통한 인간성의 회복이 가능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되씹게 한다.

▨… 그런가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그 어두운 면까지도 용서하고 사랑으로 덮어주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므이쉬킨이나 알료샤 또는 조시마를 통해서 그래도 인간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희망이 있음을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순교자들이 계속해서 생명을 잃으면서도 복음이 구원의 희망임을 전하고 증거하려 하듯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런 순교자적 열정은 도대체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

▨… “…(전략) 작가들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려고 했지만, 언제나 포기해야 했지. 끝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 아름다움은 이상이지. 지상에서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유일한 인간은 바로 그리스도란다. 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지닌 인간은 물론 그 자체로 무한한 기적이라 할 수 있지”(김형진, ‘도스토예프스키 만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조카딸에게 보낸 편지의 한 부분인 이 내용은 그대로 간증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 또한 도스토예프스키가 폰비지나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가 좀체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성직자 특히 시베리아 성직자를 싫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음에도 그의 신앙을 의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누군가가 저에게 그리스도는 진리 밖에 있다고 증명해주고 또 실제로 진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다고 하더라도 저는 진리와 함께 있느니 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게 될 것입니다.(A.B.깁슨, ‘도스토예프스키의 종교’)

▨… 주님은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를 가리키시면서 ”한국 그리스도인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한다면, 망발일까. 코로나19로 빚어진 새로운 목회환경에의 적응만 궁리하다가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도 이제는 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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