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제40회 장애인의 날이었다. 지난 1981년부터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하는 취지로 국가에서 법으로 정해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인 풍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 19 여파로 돌봄과 재활기능을 하는 복지시설의 장기간 휴업으로 더 어려워졌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교단도 부활주일 다음 주일을 장애인 주일로 정했지만 제대로 지키는 교회가 드물다. 장애인 주일인지도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사실 교회 안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자신과 같이 대하라고 명했지만,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성도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조차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들이 부족해 장애인들에게 교회 문턱은 높기만 하다. 물론 예전보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교회 내에서 불편과 편견으로 속앓이를 하는 장애인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이동 자체가 힘들 뿐 아니라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담스러워서 아예 교회 출입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예산 부족 등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장애인을 배려한다면 교회 내에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먼저 확보해 주는 것이 시급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에서도 장애인들은 뒷전이다. 3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19에서도 장애인이 겪은 인권 침해, 서비스 공백 등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재난 상황에서 병든 이들, 가난한 이들,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우선 전적인 배려가 필요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교회에서도 공동체 현장 예배를 대신해 유튜브 방송 예배를 진행하고 있지만 장애인을 위한 방송 예배는 거의 없었다.

영상예배에서도 청각장애인에게 필수적인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런 기본적인 배려조차 생각하지 못한 교회가 수두룩하다. 장애인들을 신앙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아가 물리적인 조건으로도 환대하는 교회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목회적인 배려를 통해 장애인 신자들이 교회에서 존엄과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특히 코로나 19 사태 속 드러난 장애인들의 현실과 긴급지원, 돌봄에 교회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결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거리 두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 주일은 축제일이 아니다. 상을 주고 기념행사를 하라는 것도 아니다. 교회 내에 장애인이 공존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조성하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다짐하는 주일이다. 이를 통해 장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구현해 나가야 한다.

장애인들의 아픔은 세상이 주는 보상만으론 치유될 수 없다. 주님이 그들의 위로며 안식처다. 그 일을 교회가 해야 한다. 장애인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교회가 방관자가 돼선 안 된다. 장애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복음’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명심하자. 이것이 장애인 주일이 주는 메시지다. 이제부터라도 장애인이 활짝 웃는 장애인 주일을 맞을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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