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하면 세계 인구의 약 10%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장애에 대한 개념에는 3가지의 차원이 있다.

제1차 장애는 손상(또는 결함)인데, 생리학적 결손 내지 손상을 말하며, 제2차 장애는 ‘무능력인데 1차 장애가 직·간접적으로 원인이 되어 기능적인 능력이 약화되거나 손실된 상태를 말하고, 마지막으로 제3차 장애는 사회적 불리인데, 2차 장애에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요인이 더해져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유로 장애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나와 다른 존재, 그저 긍휼과 도움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 이러한 시각은 교회 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통계적으로라면 교회 공동체 안에 10명중 1명은 장애인이 함께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장애인 성도 수가 얼마인지조차 모르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그저 구제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장애인에 대한 예수님의 인식은 어떠했을까? 장애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관점은 ‘장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도구’(요 9:3)라는 것이다. 즉, 선교적 접근으로의 장애인관이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장애에 대한 인식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되었기에 이제 모든 것을 예수님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장애인에 대하여 그렇게 여기고 계시다면 우리 또한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그러하여야 한다. 장애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빈 그릇과 같다. 그들의 삶과 모습이 세상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지 않다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쓰시기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다.
목회적으로 보면 장애인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역을 크게 3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영혼구원’이다. 장애라는 약함을 통하여 강함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하게 되고, 그로 인해 가정 구원의 역사까지 일어나게 된다.

둘째, ‘예수사랑’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특징은 가장 높은 사랑을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하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예수사랑 실천도 그 크고 높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낮고 낮은 곳에서부터 실천해 가야 한다.

셋째, ‘하나 됨’이다. 예수님은 장애인을 하나님나라 백성, 공동체원으로 여기신다. 그 하나님나라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하나 됨이다. 그 하나 됨을 위하여 반드시 있어야 할 이음선이 바로 장애인인 것이다.
이처럼 세상은 장애인에 대하여 장애(障碍)로 바라보지만, 하나님나라 공동체 즉, 교회에서의 인식은 장애(長愛, 길게, 끝까지 사랑)여야 한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은 크게 2가지 아닌가? 탕자를 기다리는 길고 긴 아버지의 기다림의 사랑,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끝까지 사랑. 바로 이 사랑이 장애를 바라보고 함께해야할 교회 공동체가 간직하고 있어야 할 따뜻한 심장이다. 이 심장이 잘 뛸 때 그 공동체는 더욱 건강한 하나님나라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세상 가운데 장애(障碍)로 살아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교회 안에서 장애(長愛)로 그 이름이 바뀌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한다.

태양을 만난 얼음이 물이 되듯, 예수님을 만난 장애(障碍)가 장애(長愛)가 되는 생명의 역사가 우리 교회들 마다 풍성하게 일어나게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