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롭게 죽음을 택하자. 그리하여 적에게는 시체만 남겨 주도록 하자. 이것은 승리한 적에게 실제로는 패배를 안겨 주는 일이요, 먼 훗날 우리 자손들의 승리를 보장하는 길이다. 우리 모두 자유라는 수의를 입자.” 비장하기 그지없는 이 외침은 마사다 요새가 무너질 것이 분명해지자 유다군 지도자 엘라자르 벤 야이르가 유다 저항군을 향해 부르짖은 마지막 당부였다.

▨… 로마에 대한 유대인들의 마지막 항전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주후 72년에서 73년까지 있었던 마사다 항전이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가 로마군에 짓밟히자 최후의 항전에 나선 유대인은 어린아이 포함 967명이었고 저들은 천험의 요새 마사다로 모여들었다. 마사다를 포위한 로마군은 정예10군단 9,000명과 노예군 6,000명이었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군세였지만 마사다 저항군은 1년 이상을 버텼다.

▨… 주후 73년 4월 15일. 마침내 마사다를 함락시킨 로마군은 경악했다. 요새 안에는 사체만 그득할 뿐 산 사람은 없었다. “이 이야기는 기록으로 남아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야 유대인들에게 중요해졌다. 마사다는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유대인들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심의 상징이 됐다. 독립 국가 이스라엘에서 마사다는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곳이자 순례지가 됐다.”(마거릿 맥밀런, ‘역사 사용설명서’)

▨… 한때는 유다군의 사령관으로 로마군과 맞섰던 요세푸스는 6주간을 버텼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항복했다. 로마로 호송된 요세푸스는 티투스 장군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대인들에게 항복을 권유했다. 유대인들은 그에게 ‘변절자’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로마에서 제국의 힘을 꿰뚫어 본 역사가의 바람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을(마태:24:2)” 파멸만은 피했으면 하는 마음 아니었겠는가.

▨… 유대인들이 로마에 의해 멸망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2,000년이 걸렸고 그 재건은 역사가 요세푸스가 기록한 마사다 항전이 촉매제가 되어 비로소 가능해졌다. 유대인들은 오늘도 한 마음으로 되뇌인다고 한다. “결코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지 않으리!”라고.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에서 말했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기자신을 위해 살면서 인류의 역사적이고 보편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쓰이고 있다”고. 요세푸스의 삶이 기억나고 동시에 나의 삶이 뒤돌아보아지는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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