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 이기고 부활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19로 사상 유례 없는 부활 절기를 보내고 있다. 부활의 기쁨을 만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순절 기간 내내 모이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부활 예배마저도 성도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에 의지해 드려야했다. 어떤 교회는 텅 빈 교회당에서 신자들의 사진을 놓고 예배를 드리는 슬픈 장면도 연출했다. 또 어떤 교회는 부활절 예배를 아예 연기하기도 했다.

세계 도처에서도 희망과 기쁨 보다는 어두운 불안과 공포에 갇혀 있다. 당장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미국은 50개주 전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일이 지금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도 위태롭다.

전 세계에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적 여파가 미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올해 세계경제 성장이 마이너스로 급격히 전환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문제는 이 위기의 깊이와 지속성은 이례적인 불확실성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부활절 인사말조차 건네기 어려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되찾아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감염병으로 신음하는 날이 지속될지라도 주님의 부활은 이 모든 것을 물리쳐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부활의 은총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올 부활 절기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코로나의 고난을 이기고 우리 모두의 소망 가운데 구체적으로 역사한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부활하기 위해선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코로나19라는 시련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고 함께 배려와 사랑으로 살아가야 이 초유의 사태를 이길 수 있다.

세상의 아픔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고백하며 더 큰 믿음으로 부활을 찬양해야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또 실의에 빠진 이웃에게 다가가야 한다.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희망과 용기를 전하자. 감염 병으로 의도하지 않음에도 넘쳐나게 된 배제와 낙인, 혐오, 소외를 부활의 영성으로 회복도록 앞장서야 한다.

앞으로 닥쳐올 경제적 위기에서는 교회의 사랑과 돌봄이 더 절실해질 것이다. 주님의 빛으로 온 세상을 밝히는 일은 우리의 사명이다. 예상보다 앞당겨진 전면적인 비대면적 사회의 도래 앞에서 교회당 중심의 신앙을 넘어서 이제는 보내고 흩어지는 원심력 교회로의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주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토대가 되는 사건이다. 교회가 부활절을 축하하는 의미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고 회상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부활절 예배도 단지 예수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것을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때의 위대한 구원의 순간이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믿는 고백 위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부활절은 일회적 기념이 아니라 우리 삶속의 부활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다. 믿음을 가진 이들이 삶의 현장에서 부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갈 때 신앙인은 부활하신 주님을 비로소 몸으로 증거 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이 고통과 혼란가운데 빠져있을수록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복음을 통해 소망을 회복시켜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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