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에 절실한 예수 부활의 복음

박명룡 목사
예수의 육체적 부활에 대한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일부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님을 주장하지만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성경에서는 열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 예수의 형제였던 야고보,  사도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음을 기록하고 있으며 고대 사회의 그 어떤 사건보다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증거가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성공회 주교였던 존 쉘비 스퐁(John Shelby Spong)은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부인한다. 예수의 부활은 실제로 죽음에서 부활한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제자들의 마음에 예수의 정신이 부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는 스퐁 주교의 주장대로라면 기독교 신앙은 허구이며 거짓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전 15:14, 19)

스퐁 주교의 주장은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 그 주장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제자들이 그들의 마음에 예수의 정신이 되살아났으면서도 마치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 역사적 사실인양 주장했다면, 최소한 그 제자들은 자신의 주장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면 그 거짓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었겠는가?

더 나아가 그 거짓을 위해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자기 가족까지 무서운 박해와 핍박, 순교의 자리까지 내 몰고 희생시켰다고 볼 수 있는 타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심지어 9.11 테러범들도 자신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그 일을 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거짓을 위해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희생시킬 사람은 없다.

둘째, 이 주장에 대한 또 다른 걸림돌은 예수님 생전에 예수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의 회심 문제이다. 예컨대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마음 속에 예수님의 죽음 이후 예수 정신이 되살아날 수 있었겠는가?

유대교의 율법으로 무장된 사람에게 예수의 정신이 되살아났다고 보기란 만무하다. 게다가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어떠한가? 예수님의 생전에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야고보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갑자기 그의 삶이 변화되어 “예수님은 진실로 죽음에서 살아나셨다”고 증언했다. 과연 이것을 예수의 정신이 되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무슨 이유로 인하여 예수의 대적자였던 바울과 불신자 야고보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우리가 예수 부활의 증인이다”라고 증언하게 되었겠는가? 그것은 그들의 증언대로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에 관하여 증언한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 말씀을 볼 때, 예수 부활의 증인은 한 두 사람이 아니다. 베드로와 열 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그리고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특히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던 AD 55년경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AD 30년)으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시점으로 그 때까지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목격자들의 대다수가 살아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으로 예수의 부활 사건을 조사해 보면 고대 사회에서 일어난 그 어떤 사건보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증거들이 매우 풍부하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련된 사실 중에서 일반 역사가들도 인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은 무엇인가? 간단히 네 가지 사실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예수는 십자가에 처형되어 무덤에 묻혔다. 둘째, 예수의 무덤은 사흘 후에 빈 무덤으로 발견되었다. 군사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었고, 제자들은 예수의 시신을 훔쳐갈 엄두도 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셋째,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증언하였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오백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한다. 넷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경험 때문에 그 제자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부활의 복음을 증거했다. 이것은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무엇인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가장 확실한 답은 초기 제자들이 확신했던 바대로,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답변뿐이다. ‘예수님은 실제로 부활하셨다!’ 이것 외에 다른 설득력 있는 설명은 없다.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하여,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 마이클 그린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예수님의 출현은 고대의 어떤 사건보다도 믿을 수 있는 사건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살아나신 주를 보았노라.’ 그들은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고백했다. 그들은 바로 그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린 박사의 주장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 경험으로 인하여 그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2000년의 시간의 벽을 넘어 오늘날에도 부활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초기 그리스도인의 변화와 동일한 변화의 삶을 선물해 주고 있다.

부활의 주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에게 새로운 삶의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시고 변화의 삶을 시작하신다. 부활의 주님은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시고 참된 소망을 주신다.

지금 세상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인류에게 공포와 절망을 안겨주고 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이 있구나!’ ‘절망을 희망으로 역전 시키는 길이 있구나!’ 바로 그 희망의 길을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공포 속에서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예수 부활의 복음은 가장 강력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말씀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이 절실히 필요한 세상이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도 산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영원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헌신할 수 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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