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수상 네루는 부활이야말로 교회 힘의 근원이라고 갈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천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꽁트와 연극시인 칼라일이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꽁트가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교 대신 완전한 종교를 창설하려고 합니다. 모든 신비를 배제한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구구법과 같이 분명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칼라일이 대답했다. “매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 당신이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은 과거에 아무도 하지 않았던 말을 하고 보통 사람보다 특이한 생활을 하다가 십자가에 형을 받고 죽은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전 세계 사람들로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믿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당신의 종교는 비로소 생명을 얻게 되고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가 바라는 부활절은 모든 교회가 네루 수상과 칼라일처럼 부활의 역사성에 확신을 가지고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이번 부활절은 성서가 증언해 주듯 부활절의 억누를 수 없는 폭발적 감격이 모든 크리스천들 심령에서 솟아나고 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활은 생명 그 자체다. 그렇게 나약했던 제자들이 불을 토하는 사자처럼 3천명을 회개시키는 능력을 나타내 보였던 부흥이 곧 부활 이후에 성령의 역사로부터 시작된 것을 우리가 알진대 부활절을 교회의 주기적 행사가 아니라 교회 부흥의 모티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봄과 부활절을 대비시켜 보면 무엇인가 희망과 설렘이 일어나지 않는가! 이제 한국교회는 침체된 겨울잠과위축된 판세를 과감하게 깨치고 모두 모여 기도함으로 오순절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우리 교단은 해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고난주간에 전도운동을 펼쳐왔는데 이것을 더욱 심화시키고 전국 모든 교회가 참여하고 실시하도록 구체적 자료와 시안을 배포해주어야 한다. 부흥과 상관없는 부활절은 마치 국경일을 맞아 순서에 따라 기념식을 치르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서울특별시 부활절 준비를 보면 소요경비와 인원동원이라는 난제때문에 해마다 대형교회 위주로 순서가 엮어져서 중소형 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참여할 기회가 배제되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예배가 어찌 한국교회 전체의 연합예배라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 실무를 맡다 보면 대형교회가 사심없이 협력하지 않으면 이런 악순환은 극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금번 인천광역시 부활절연합예배는 이런 소외감과 아쉬움을 극복하려는 결단을 내렸다. 설교자인 신경하 감독회장 외에는 모든 순서를 공동회장과 각 구 연합회장이 맡도록 증경회장단에서도 배려해주었다. 대형교회에서는 실내외 안내와 헌금과 찬양을 맡아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기로 했으며 특기할 것은 예배 초점을 온전히 예수 부활에 맞추어 행사적 순서를 과감하게 배제하였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이번 부활절연합예배를 한국교회의 도덕성이 부활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교회가 세계선교 역사상 가장 경이적인 효과를 거두었다고 되뇌이면서 안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제의 암울했던 때에도 민족의 소망이자 등불이었던 한국교회가 그리고 6·25의 폐허를 딛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해왔던 교회들이 더 이상 의혹과 공격의 대상으로 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교회 안에 잔존하는 구태와 무기력이 어떻게 더 이상 생명의 부활과 공존할 수 있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과감히 개선하고 무너진 도덕성을 속히 회복해서 다시금 사회와 국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도록 일신되어야 한다.
W.P.레몬은 부활절의 실존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부활절은 또 다른 세계로의 통행증이지만 이 세계에서의 새로운 시작이다’라고 말했는데 오늘 한국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레몬이 말한 그 의미를 새롭게 음미하면서 인지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