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너, 함께하겠는가?

하도균 교수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우리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도 ‘한 주, 두 주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던 것이 어느덧 한 달을 넘어설 지경입니다. 서로가 온라인 예배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적 갈증이 증폭되어 가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위기감은 ‘어떻게 이 상황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까’에 더 지대한 관심을 보이게 합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서서히 그 의미가 빛바래져 가는 것이 있습니다. ‘사순절’,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예수님의 고난, 십자가의 의미가 빛바래져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가 쓸쓸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아니, 십자가는 2000년 전에도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인류를 위한 역사적이고 획기적인 사건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십자가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제 인류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화해하고 창조의 질서대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박수 받고 시작할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어둠과 함께했던 십자가
마태복음 27장 4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마지막으로 네 번 째 말씀을 하시기 전, 어둠이 몰려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시간으로는 6시부터 9시까지며, 우리 시간으로는 낮 12시에서 오후 3시까지입니다. 도저히 어두움이 몰려올 수 없는 시간에 몰려온 어두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기이한 능력으로 자연계에 이적을 베푸심으로 그것을 통하여 무지한 인간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히스기야가 사형을 선고받고 간절히 기도했을 때, 일영표의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렇게 보자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 몰려온 어두움 역시 하나님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 못 박혀 죽으시는 순간에 어두움을 온 땅에 내리신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죄 가운데서 행하는 잘못된 일임을 깨닫게 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데 동참했던 백성들, 제사장들, 서기관들, 율법사들, 정치가들은 모두 한가지로 치우쳐서 어두움을 사랑하고 또 어두운 일들을 즐겨 행하였습니다. 그들의 영혼에는 흑암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이 놀라운 흑암은, 바로 그들의 상태를 육신의 눈으로 또렷이 감지할 수 있도록 베풀어 주신 교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자신들의 죄 때문에 빚어진 영적인 어두움들을 하나님을 통해 직접 눈으로 보고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외로운 십자가
2000년이 더 지난 오늘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서 지셨던 십자가는 ‘메시아의 고난을 통한 세상의 구원’이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담아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에 더 외로워 보입니다.

고난주간과 부활절이 시작되지만, 그 절기의 의미가 빛바래져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은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절기에 십자가를 더 주목하고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며 세상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났었습니다. 로마인들, 아니 이방인들이, 아니 예수님을 죽인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십자가를 외면했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제자들이 십자가를 떠났습니다. 오히려 생각지 못했던 구레뇨 사람 시몬과 예수님 때문에 울고 있는 여인의 한 무리만 그곳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골고다 언덕에 서 있는 십자가! 사람의 눈에는 외로워 보일 수 있지만, 예수님 때문에 울고 있는 여인들이 있기에, 그리고 곧 제자들이 십자가 앞으로 돌아올 것을 알기에, 그들을 통하여 세상이 이 앞에 와서 회복될 것을 알기에, 소망을 품고 묵묵히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십자가는 외롭게 서 있지만, 낙담하고 좌절한 자들이 그 앞에 나와서 희망과 소망을 갖고 일어서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를 외롭게 두었지만, 하나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살리는 일들을 계속해 오셨습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으로, 내 안에도 역시 마음 한쪽에 슬며시 자리 잡은 외로움이 있었지만, 그 외로움 때문에 십자가를 바라보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여전히 십자가는 따스한 예수님의 손길을 담아 외로운 나를 치유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거기에, 너, 함께 하겠는가?’ 이 질문에 답하며, 외롭게 선 십자가와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십자가 붙잡고 고난주간을 함께 합니다. 더 큰 생명의 일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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