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성훈 목사
꽤 오래 전에「히든 피겨스」라고 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천재적인 수학 머리를 가진 흑인 여성이 미항공우주국 (NASA)에 들어가서 온갖 차별대우를 받으면서도 결국 우주선을 발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온갖 모멸과 수치심을 견디며 그녀가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이 아닌 그녀의 천재적인 수학능력에 대한 분명한 확신 때문이었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외부의 압력이 아무리 강해도 내부의 확신이 강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 앞에는 홍해라고 하는 장애물 앞에서 6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은 당황한 나머지 모든 비난의 화살을 모세에게 돌렸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곳에서 죽게하느냐”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하는 등의 온갖 비난이 모세에게 쏟아졌습니다. 이 때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사뭇 명령조의 음성으로 들릴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바로 앞 절에서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고’란 말은 언젠가 성결신문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말씀은 부드러운 어조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는 말이 강한 어조의 명령일리가 없습니다.

원어에서 “가만히 있을지니라”에 해당하는 ‘타리슌’이라는 히브리어는 본래 ‘말 못하는 장애인이 되다’에서 파생한 말인데 ‘히프일’이라고 하는 미완료태의 동사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 ‘너희는’이란 말이 2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자면 “너희는 너희는(X2) 앞으로 말 못하는 장애인이 되게 할 거야”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말이 그들을 향한 모세의 악담이 아닌 이상, 이는 “하나님이 이제 곧 싸우시게 될 텐데 당신들은(X2) 너무나 놀라서 입을 다물게 될 것입니다.”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무한한 신뢰가 있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무한한 신뢰가 불신앙적인 외부의 치명적인 압력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플러그를 통하여 전기에 연결이 되면 전력이 생성되듯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면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견디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돈과 권력과 인간관계의 결핍으로 인해 좌절을 느낄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갑니다. 이들을 향해 시편 39편 5절에서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란 선을 행할 의지조차 없는 우리의 삶의 플러그를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는 전기에 꽂는 일입니다. 나라는 물론이요 교회가 많이 힘든 때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당대의 사명을 훌륭히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상황이 지금보다 견디기가 쉬워서가 결코 아닙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절망적이어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신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언제나 소망이 보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황폐해진 이 땅과 이 민족 가운데 유일한 희망과 소망은 오직 하나님을 무한히 신뢰 할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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