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300만 시대를 맞으며

백수 300만 명의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선거 공약에서 6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새 정부가 35만개로 수정 발표하였지만 새로 생긴 일자리의 수는 8개월째 감소를 계속하고, 생산 가능인구에서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을 뜻하는 고용률이 5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통계청에서 발표한(2008.3.13) ‘고용동향’에는 ‘비경제 활동 인구’ 가운데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나 계획이 없어 ‘쉬었음’으로 분류된 사람이 162만 8천명,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60만 7천명, 일자리를 구하고 있으나 얻지 못한 실제적 실업자 81만 9천명 등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실상의 실업자가 305만 4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1월 이후 월별 기준으로는 최고치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값싼 중국산 제품, 외국인 노동자의 저임금 등으로 물가 안정을 유지하여 왔지만 부존자원이 없고 획기적인 신기술이나 발명도 없이 국제 원유, 원자재, 곡물 가격, 불리한 환율에서 결코 안전할 수 없는 현실이다.

‘경제(經濟)’의 본딧말 경세제민(經世濟民)은 당대(當代)의 세상에 바른 길을 닦고 이치를 세우는 일과, 백성들을 가난과 질병 등의 어려움으로부터 건져주는 것을 말한다. 서양에서의 경제(economy)란 말은, ‘집’이나 ‘가족’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집안 일’에서부터 발전하여 ‘부와 성공’, ‘번영’ ‘더불어 살다’ 등의 다양한 뜻으로 쓰였고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영어의 생태·환경(ecology), 세계적 일치와 연합(ecumenical) 등의 뜻을 가진 말로 가지를 넓혀 갔다

그러므로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보다 일할 수 있는 나라를 지표로 하고, 경제 살리기보다 사람 살리기를 우선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거창한 명분이나 구호가 아닌 집안 단속에서부터, 가족을 먹여 살리는 장바구니부터 시작해야 한다. 학력을 높이고 기술을 개발하고 외국어 구사능력을 키워도 그들이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고등실업자(?)만 양산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돈 보다 소중한 자아실현의 철학, 성실한 근로정신,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가치관 등을 심어주어야 한다.

기업인은 투자계획의 우선순위에 이윤이 첫째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균등한 기회부여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일이 제일 우선이어야 한다. 구조조정이나 경영효율성을 앞세운 퇴출은 기업의 단기적인 이익과 안정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결국 가정의 붕괴와 사회적 경기 침체로 장기적인 불황을 가져오게 된다. 바꾸어 말하자면 고용은 한 사람의 취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넓게 보면 한 가정을 살리고 행복한 사회를 이루고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출발인 것이다. 사익보다 공익이 먼저라는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것은 개인과 가정의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공동체 의식의 해체와 불행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고립된 ‘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는 ‘너’가 함께 있어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경제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죽임’이 아니라 ‘살림’인 것을. 특별히 크리스천 기업인들에 대한 청지기 신앙, 사회에서 얻은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려는 투자와 고용확대 등의 책임윤리가 필요하다.

취업 희망자들은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일할 뜻은 있지만 보수나 서열이 만족스럽지 못해 쉬는 자로 분류된 눈높이가 높은 실업자들은, 22만 5천 명의 불법 체류자를 포함한 65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가 기피하는 직종에서 희생적으로 일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다면 이 숫자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정부는 바른 가치관을 심어야 한다. 기업은 눈 넓이를 키워야 한다. 실업자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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