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라크를 치신 하나님

이성훈 목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슴 벅찬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이고(창 12:1),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창 35:11)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꽤 요원해 보이기만 했던 약속의 성취가 출애굽이라는 위대한 사건으로 점화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서문은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출 1:5)라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이 표현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란 직역을 한 것으로서 ‘야곱의 후손’을 의미합니다. 사실 ‘야곱의 후손이라는 표현을 위해서는 보다 더 일반적이고 히브리적인 표현이 존재합니다. ‘제라아 야콥’이나 혹은 ‘바님 야콥’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을 뒤로하고 굳이 ‘야라크 야곱’(야곱의 허리)이란 말을 썼는데, 이와 같이 히브리어 성경에는 어떤 본문과 연관된 사건을 상기시키고자 동일한 용어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할 때 ‘허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라크’는 창 32장에서 야곱이 천사와 밤이 새도록 씨름할 때 천사가 야곱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서 때린 야곱의 ‘환도뼈’와 동일한 용어입니다.

창 32장에서 ‘환도뼈’라고 번역된 ‘야라크’는 ‘생식’과 관련이 있고 ‘힘의 근원’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과 씨름할 때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히. 야라크)를 위골시켰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을 경쟁상대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 분을 붙들고 의지해야 할 대상임을 말씀해 주신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야곱의 후손이라고 표현할 때 굳이 ‘제라아 야콥’이나 혹은 ‘바님 야콥’을 사용하지 않고 야곱의 허리라는 표현을 쓴 이유에 대한 단서입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출애굽의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만 가능한 역사이며,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란 단지 혈통에서 나온 이들이 아닌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고 믿고 신뢰해야 하는 자들을 의미함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모습을 가졌는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미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못한 죄인들이 그 죄가 드러나는 것이 너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워서 산과 바위에게 무너져 자기를 덮어 달라고 소리 지른다고 했을 정도입니다. 오죽했으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실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러한 우리를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의 망가진 인생에 새로운 이름을 주셨듯이 우리를 그렇게 대우해 주셨습니다. 인간의 교만과 술수와 교만함으로 인해 부서진 ‘야라크’(‘환도뼈’) 였습니다. 더 이상 사용이 불가할 줄 알았습니다. 끝이라고 여겨진 그 ‘야라크’(환도뼈)를 가진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신 하나님이 그 ‘야라크’(허리)에서 출애굽을 계획하셨고 시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말씀의 성취는 그렇게 구체화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참 놀랍기만 한 이유입니다. 신기하고 가슴 벅차 오를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면 일평생 믿고 신뢰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그 분은 참 신실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표현을 썼던 이유도 여기에 기초합니다. 부서진 ‘야라크’(환도뼈) 였으나 바로 그 ‘야라크’(허리)에서 새롭게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울도 가슴 깊이 저며 오는 은혜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이러한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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