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이번에는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인 미국의 최대 영화상인 아카데미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세계 극장가를 장악하다시피하고 있다. 지금 세계 거의 모든 영화관에서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외국인들이 특이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 중의 하나가 영화 속 남매가 P.C.방에서 졸업장을 위조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졸업장 하나로 삶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학벌이 결코 출세의 보증수표가 될 수 없는 서양에서는 매우 기이한 설정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장면은 물론 과장이 섞인 코믹한 설정이지만, 한국에서 어느 학교 출신인지는 사회생활 하는 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항목이다. 한국인에게 모교는 긍지의 원천이다. 한편으로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병폐인 파벌형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졸업시즌을 맞아 올해는 코로나19로 졸업식 풍경이 사뭇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졸업식을 생략하거나 간략한 행사로 대체하는 학교들이 많다. 졸업식에 가족과 지인들의 축하방문을 제한하는 학교도 있고, 유튜브로 졸업식을 진행하는 학교도 생겨났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정든 교정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의 여유롭고 유쾌하던 기억은 졸업과 함께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취업을 위해, 정규직을 얻기 위해 젊은이들은 여기저기를 쉼 없이 떠돈다. 산업구조가 바뀌어 일자리가 줄어드는데다가 경제난으로 인해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적확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많은 젊은이들이 절망감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오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대하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성경에서 이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창세기 12장 아브람이 고향과 친적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장면이다.

고향인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지방에서 사악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양치기 노인 아브람은 칠순의 나이에도 영원한 것을 탐구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브람은 어느 날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노구를 이끌고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해 먼 길을 나선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이 된다.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말은 비단 몇 천년 전의 양치기 노인 아브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과오나 부조리를 떠나 한 세상을 시작하려는 현재나 미래의 사람 누구에게나 이 말은 생생하게 울려 퍼지는 명령이다.

여기에서 ‘네 아버지의 집’은 거짓과 불신으로 이루어진 한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바르지 못한 것들과 작별하고 새 하늘을 열고 싶은 사람, 전환기에 선 젊은이, 부끄러운 오늘을 고민하는 모두에게 이 말은 몇 천 년을 담보한 진실로 울려퍼진다.  

교정을 나서는 젊은이들을 축하한다. 기성세대들은 우리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친화적인지를 질문하고, 그들의 앞날을 평탄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를 나오는 젊은이들은 우리사회의 내일을 위한 최고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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