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 한 소년이 살았다. 그냥 평범한 10대 소년이었지만 유색인종이 많이 사는 동네의 특성 탓인지 금발 백인 소년의 행동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말썽꾸러기 소질에 그의 부모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날 동네 할머니 한 분이 그 아이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너는 똑똑하고 유난히 말을 잘하니 설교자가 되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

▨…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날 이후 이 소년의 머리에서는 할머니의 말씀이 사라지지를 않았고 어깨를 감싸안아주던 손길의 느낌도 잊혀지지를 않았다. 이 소년은 결국 22세에 플로리다 성서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남침례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평생을 복음전도자로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한 목사로 평가받은 그의 이름은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이다.

▨… 이 일화에 의하면 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난히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재주가 조건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목사가 되는데에 그런 재주가 무엇보다 우선하는 조건이라면 한국교회에는 빌리 그레이엄이 넘쳐나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 성결교회는 똑똑하고 말 잘하는 것 보다 말씀과 십자가 앞에 무릎꿇는 믿음을, 또 교회를 지킴으로 감내해야 할 가난에의 결단을 먼저 확인하려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 혹자는 1973년에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110만 명이 참석하는 대집회를 인도한 빌리 그레이엄이야 말로 복음주의의 승리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이들은 1974년에 복음주의 목회자, 신학자, 평신도 등 2700여 명을 스위스 로잔으로 이끈 대회를 통해 복음주의 기독교의 승리를 현시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금세기의 복음전도사로서 가장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실 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그가 밝힌 자신의 삶의 목표를 보면 그는 단순히 ‘똑똑하고 말을 잘하는’ 목사에 그치려 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말했다. “내 일생의 유일한 목표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만 가능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다. 빌리 그레이엄 소천 2주기(2월 21일)를 한국교회는 여의도 대회가 아니라 그의 이 목표 때문에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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