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국 목사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이상(李霜)의 소설 「날개」의 마지막 부분이다. 내용이 난해하고 흥미도 없었다. 논리도 없어 보여 이런 소설도 있구나 싶었다. 상징으로 장식된 작품의 근저에 깔린 사상을 들여다보는 안목이 내게 부족했었던 것 같다. 소설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문장에서 여명처럼 다가온 메시지가 나를 일깨웠다.

고령으로 접어들면서도 해가 바뀔 때면 무엇에든 도전하고 싶었다. 그럴 때는 이상의 작품「날개」의 끄트머리 문장, ‘날개야 다시 돋아라’가 생각났다. 

문우 H에게서 연필 하나 가지고 단순한 기법으로 명암을 처리하여 초상화를 그릴 수 있는 ‘연필 스케치’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 사십여 년 전 유럽 여행을 하면서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거리를 구경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백발의 화가가 이젤 앞에 앉아 간단한 필기도구 하나로 초상화를 그리던 멋진 광경이다.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겨 등록을 했다.

‘연필 스케치’ 첫 강의가 있던 날 아침에 스케치북이 든 배낭을 메고 문 밖을 나서는데 아내가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니 느긋한 마음을 가지세요, 당신네 집안은 손재주들이 있잖아요”라며 손에 점심값을 쥐어주었다. 그럴 때는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첫 등교하는 어린이 같고 아내는 엄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은퇴 후 요리사와 수필가의 꿈도 꿔봤고 이제는 그림쟁이 꿈을 꾼다. 모든 것이 아내의 끊임없는 격려 덕분이다.

연필 스케치를 배우는 강의실은 모두가 벽면을 향해 앉아 걸어놓은 얼굴 사진을 이젤 위에 펼쳐놓은 스케치북에 그렸다. 그렇지만 처음 등록한 사람은 따로 한 쪽으로 모아 간단한 석고상을 그리게 했다. 강사의 설명대로 시도했지만 연필 잡은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끝나고 나서 아직 작품에 열중하고 있는 고참들의 곁으로 가 구경을 했다. 사진을 빼 닮은 그들의 스케치 솜씨가 놀라웠다. 오십대로 보이는 여성 하나는 장난기가 넘쳐나는 소녀상을 그리고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방긋방긋 웃는 얼굴에서 숨결을 느낄 만큼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을까 싶었다. 그의 모습이 멋져보였다.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깜박 잠들었던 건 아닌데 야무진 꿈을 꾼다. 5~6년이 지난 후 어느 봄날이다. 기억에서 어렴풋한 몽마르트 언덕의 화가거리를 노인은 다시 찾아가 배낭에서 스케치북을 꺼낸다. 때마침 흑인 청년 하나가 앞을 지나간다. 노인은 그에게 손짓을 하며 연필을 들어 보이고 앉는 시늉을 하니 눈치 빠른 젊은이가 다소곳이 그 앞에 와 앉는다.

노인은 두툼한 청년의 입술을 중심잡고 화폭에 익숙한 손놀림으로 곱슬곱슬한 머리칼에서부터 쓱쓱 그려간다. 검은 얼굴을 그리기에는 연필 스케치가 자연스럽고 수월하다.
20분이 조금 지난다. 노인은 완성된 초상화를 청년에게 보여주며 표정을 살핀다.

순하디 순해 보이는 청년의 갸름한 얼굴에서 함박웃음 꽃이 핀다. 초상화 그림을 공손히 받아든 젊은이가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다른 손으로는 일렁이는 물결을 표현한다. 동양에서 온 노 화가가 그려준 뜻밖의 선물을 오래오래 간직하겠다는 의미다.

수없이 허리를 굽신 거리며 젊은이는 떠나가고 사십여 년 전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와 자기 얼굴이 겹쳐짐을 보는 노인은 조용히 일어나 배낭을 메고 다음 여행지로 향한다. 잠깐의 상상, 행복한 미소가 내 입가에 어리는 느낌이다.

새해 들어, 내 겨드랑이도 가려워지고 그 자리에서 인공의, 날개가 돋아 창공을 날라 오르는 꿈을 꾼다. “시절이 하수상해도 날개야 다시 돋아라. 다시 한 번 날아 보자꾸나”라고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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