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목사
주일 저녁입니다. 사역 끝나고 쪽잠을 자고 일어났습니다. 어제 자동차를 끌고 서울을 다녀왔더니 피곤이 쌓여 있었던 모양입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운전대만 잡으면 졸립니다. 저와 비슷한 연배의 다른 분들도 그런지 모르겠네요. 일종의 노쇠현상이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거리를 갈 땐 가급적 기차 등 대중교통을 이용합니다.

피곤한 가운데 주일을 준비하고 있는데 문자가 날아들었습니다. 권사님 두 분이 멀리 가 있기 때문에 예배 참석이 어렵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두 분이 같은 일로 가지는 않은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함께 교회에 못 온다고 하니 기운이 빠집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내에서 농촌에 있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김 집사님 부부도 일이 생겼다면서 급히 헌금만 올리고 돌아갔습니다.

성도 수가 많지 않은 농촌교회에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지면 교회 분위기가 더욱 옹색해집니다. 제 기도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주일 아침에 서둘러서 시내로 성도들을 태우러 나갔습니다. 주공 2단지 강 권찰 부부는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 주일은 빠져서 제 마음이 조마조마 했는데, 이런 전화를 주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부부는 여느 주일보다 더 산뜻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강 권찰은 그 사이 이발까지 해서 더 말끔하게 보였습니다. 차에 오르면서 부인인 윤 권찰이 “목사님 선물!” 하면서 ‘맛동산’ 두 봉다리를 운전석 옆에 올려놓습니다. 제가 과자 중에서 ‘맛동산’을 가장 좋아하는 것을 윤 권찰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가 선물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9층에 사는 이 집사님이 목사님 드리라고 사 준 거라요. 얼마 전 자기 교회까지 태워다 주셔서 감사하다면서요. 목사님 뭐 좋아하시냐고 묻기에 ‘맛동산’이라고 했지요. 하하하…”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도리어 내가 미안하네요.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3주 전입니다. 그날도 주공 2단지로 강 권찰 부부를 태우러 갔습니다. 9층에 사는 이 집사님은 시내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50대 후반으로 전도도 열심히 하고 이웃에 사는 몸이 불편한 분, 다문화 가정 아이들, 연로하신 분들을 위해 봉사도 즐겨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그날따라 그 교회 차량이 문제가 생겨 이 집사님은 택시를 불러 교회에 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이 집사님을 교회 태워 주고 가도 예배 시간이 빠듯하지만 맞을 것 같았습니다. 제 차를 이용하는 김 집사님이 그날따라 직접 차를 몰고 오겠다고 한 것이 시간을 다소 벌게 해 주었습니다.

이 집사님을 차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이 집사님 교회 앞에 내려 드렸습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예를 차렸습니다.오늘 선물로 전달 받은 ‘맛동산’ 두 봉다리는 그것에 대한 감사 표시인 셈입니다.

이웃 교회에서 모범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을 볼 때마다 한편 부러우면서도 또 우리 교회 성도처럼 마음과 정이 갑니다. 허기야 하나님도 한 분이시요 성령도 하나요 주님의 몸 된 교회도 하나입니다. 성도가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린들 모두 하나님의 아들딸들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희비의 연속입니다. 목회도 그렇습니다. 비(悲)만 있고 희(喜)가 전혀 없다면 아무리 주님의 일이라고 해도 감내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오늘도 제겐 희비가 교차하는 날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예배에 많이 빠진 것이 비(悲)라면 이웃 교회 집사님이 선물로 준 ‘맛동산’ 두 봉다리는 희(喜)입니다. 하나님도 같은 생각이시겠지요?

* 맛동산 두 ‘봉지’라고 쓰지 않고 두 ‘봉다리’라고 경상도 방언을 쓴 것은 윤 권찰의 실제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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