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복음 메시지로 용기와 희망 심자

매해 목회계획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설교계획이다. 사실 일 년의 설교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찬반이 갈리는 화두다. 하지만 유치원 원아교육도 치밀한 교육 과정 하에 진행되는데 성도의 영적 교육과 양육이 구체적인 목표와 세밀한 과정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런 골치 아픈 논쟁에는 양자택일적인 상처보다는 인간이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이 영감으로 도와주시는 상호 균형과 조정의 지혜가 정답일 것이다.

다양성 속 공통점 견지해야
가장 심각한 것은 다양성의 문제이다. 목회자들마다 목회 철학이 다르고 개 교회 마다 목회계획이 다르다. 거기에 우리 교단은 교회력을 바탕으로 매주 설교본문을 통일되게 진행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획일화된 설교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성결교회라는 ‘복음의 특수성’ 안에서 사역하기에 기독교 일반의 보편성과 더불어 우리만의 공통점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설교계획에서 기독교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대강절, 성탄절, 주현절, 사순절 부활절 그리고 오순절 등 주요한 절기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 보편성에 보조를 맞추고, 서울신학대학기념주일, 성결교회주일 등 교단이 정한 절기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 담자
주일 설교의 구체적인 계획을 공통으로 가져가기가 어렵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가치들’을 공유하는 설교계획을 세울 필요는 있을 것이다. 첫째는 후츠파(Chutzpah) 정신의 강조이다. 후츠파는 무례, 뻔뻔, 철면피와 함께 용기, 배포, 도전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로 오늘의 이스라엘을 있게 한 도전정신이다. 새해에는 1단계 미중 무역협상 타결 등으로 ‘회복’(recovery)과 ‘리플레이션’(reflation)을 예측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경제개혁 없는 단기 부양책 위주의 정책, 북핵 리스크, 미국의 자국 위주 정책 등으로 여전히 암울할 것이라는 전망이 상존한다. 이런 모호함 속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자포자기나 절망이 아닌, 되게 하시는 분이고 무례를 범하는 친구처럼 강청을 요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강단은 일어섬의 복음, 용기와 희망의 복음을 지속적으로 전해야 한다.

기독교적 가치의 공유·확산 필요
둘째는 기독교적 가치의 공유와 확산이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명’을 저술한 스위스의  역사학자 부르크하르트는 헬레니즘 시대에는 예술이, 로마시대에는 정치가, 중세시대에는 종교가 사회 각 분야를 리드했다면 미래에는 경제가 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바로 그 시대가 도래했다. 지금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사랑과 공의의 회복이다. 사람을 있는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를 그리스도인이 만들어 가야 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않고 진영의 논리가 정의를 결정하는 분열의 세태 속에서 가장 시급한 하나님의 공의와 화해를 성도들은 몸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성결의 사중복음 메시지 회복 요청
셋째는 성결의 복음 강조이다. 성결교회가 해산되기 직전까지 활천에 실린 설교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설교 주제는 사중복음이었다. 이러한 사중복음의 강조는 같은 시대 감리교의 ‘신학과 선교’, 장로교의 ‘신학지남에’ 실린 설교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성결교만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광복 이후 사중복음은 성결의 강단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장로교인들은 이사를 가도 장로교를 찾아가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자조가 우연히 나왔겠는가! 인륜이 땅에 떨어진 오늘의 상황에서 청결함과 거룩함의 녹색복음 만큼 절실한 것이 어디 있는가! 4차 산업혁명의 첨단과학이 인간 역사의 무한함을 선언하는 교만함 앞에 심판으로 다가오시는 예수의 재림이야말로 역사의 풀린 고삐를 다잡는 유일한 희망 아닌가? 설교자는 사중복음이라는 처방을 이 시대를 향해 내 놓아야 한다.

기독교 기본 교리 강조
넷째 기독교 기본 교리에 대한 강조이다. 최근 한국 교회는 이단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도들이 신앙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단사설에 현혹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따라서 구원론과 교회론 등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기본적인 교리에 관해 설교자는 6주에 한번 정도 교리 설교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설교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과도한 설교횟수다. 설교자는 새벽예배를 포함 일주일에 10회 이상의 설교를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설교의 흔함’은 회중에게도 마냥 유익하지 않다. 그렇다고 예배 횟수를 줄이는 것은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는 말씀에 저촉된다. 이 문제를 푸는 지혜로운 해법은 ‘예배특성화에 따른 설교의 특성화이다.

불특정 다수가 출석하는 주일설교는 생명을 걸고 준비하는 ‘설교’여야 한다. 주일 오후 설교는 교육설교(Didache Preaching)로 칠판이나 보조 자료 등을 동원해 진행하는 것이 좋다. 기독교 교리와 윤리, 기독교 역사, 이단 등 다뤄야할 주제가 얼마나 많은가! 수요예배는 장로 권사 등 교회 중직자들과 액티브 크리스천들이 모인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성경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설교자는 수요예배를 ‘성서학당’으로 규정하고 강해설교 보다 더 세밀한 단어 하나하나를 깊이 연구해 나가는 ’주석설교‘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요심야예배는 교회의 ’영적 분화구‘로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 성령의 능력안에 있는 교회됨을 위해 금요에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성도들이 마음껏 기도하고 울부짖고 마음껏 찬양하는 영적 분화구로, 일일부흥회식으로 예배를 기획하라.

철저한 자기 계발 요청돼
마지막으로 새해에 설교자가 해야 할 필수 과제는 ‘전달되는 설교를 위한 자기 계발노력’이다. 사실 설교자의 성장이야 말로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말씀의 깊이를 보는 ‘거인의 눈’을 확보하는 지난한 작업은 차치하고라도 올해에는 ‘홀로 하는 독백’에서 ‘함께 하는 대화’로의 설교복원만이라도 시도해 보자! 많은 방법이 있지만 당장 깊이 있는 주석과 말씀 묵상을 통해 설교의 주제를 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설교 작업에 충실하자.
그리고 주제를 펼쳐나감에 있어 제시할 수 있는 소재의 다양성(본문 및 주제설명, 성구인용, 예화. 간증, 경구나 책 인용, 통계, 사시자료, 유머, 단어나 개념설명 등)부터 확보하자.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이다. 설교가 살아야 기독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나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는 것은 모든 설교자의 영광 아닌가? 그래서 새해는 모든 설교자에게 부담스런 희망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