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천 화재 참사로 가장을 잃은 가족들
고 박한주. 박재용 목사 가족들

2년 전 겨울, 예기치 못한 불의의 화재 참사로 목숨을 잃은 고 박한주 목사와 고 박재용 목사. 시간이 지나며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그 때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은 여전히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 자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은 한순간에 지워지지 않았다.

“작은 애는 납골당에만 가면 제가 울어서 싫다고 납골당에 안 간다고 해요. 점점 나아지겠죠”

어린 딸과 함께 경기도 일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 박재용 목사의 아내 김혜영 사모(41세)는 앞으로 살길도 막막하지만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가 커 보여서 걱정이다. 집에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던 예람(초5) 하람(초3) 두 딸은 아빠 사진 보는 것도 꺼리고 있다. 아빠의 2주기 추도식 참석도 거절했다.

“납골당에 아빠 만나러 가자고 했는데 싫다고 해서 저 혼자 갔어요. 아빠 사진만 봐도 화를 내더라고요. 아빠 얼굴 보기 싫다고…. 아직도 많이 힘든가 봐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공부도 가르쳐주고 매일 함께 놀아주며 챙겨왔던 터라 마음의 상처가 큰 탓이다.

▲ 고 박재용 목사의 아내 김혜영 사모와 두 딸.

그래도 아이들은 김 사모의 가장 큰 위안이다. “엄마 없어도 혼자 밥을 챙겨먹고 동생도 잘 돌봐주는 의젓한 큰 딸이 남편 대신 위로가 되어준다”고 김 사모는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아빠는 집에 언제 오느냐고 물어보던 작은 딸 하람이도 “아빠는 항상 우리 곁에 있다”면서 “아빠는 천국에 갔는데 왜 힘들어해 울지마”라고 엄마를 위로할 줄 아는 기특한 아이로 자랐다. 애틋한 가족 간의 사랑이 상처를 아물게 하고 있다.

김혜영 사모는 “아이들이랑 상처나 아픔 없이 건강하게 살겠다”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세 모녀를 짓눌렀던 아픔은 이제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고 박한주 목사의 부인 백은선 사모(59세)에게는 남편을 떠나보낸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고난이 찾아왔다. 가장을 잃고 어찌할 바 몰라 혼란한 상황에도 살아보려고 안간 힘을 썼지만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질병이었다. “작년에 건강검진하다가 암을 발견했어요. 유방암 2기 진단받고 바로 수술했죠. 방사선 치료와 항암치료는 마쳤고, 지금은 표적항암치료를 받고 있어요.”

갑자기 남편을 잃고 설상가상 암 투병까지 하면서 ‘하나님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따져 볼만 한데도 그녀는 “수술이 잘되고 부작용이 적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둘째 딸 지은 전도사와 함께 충주에 거주 중인 백 사모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큰 딸 지혜. 대학생 막내 에스더와 함께 하는 것만도 감사하다고 했다. 

▲ 고 박한주 목사의 아내 백은선 사모와 세 딸.

그들이 역경을 딛고 일어서게 한 힘은 역시 기도였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어요. 하나님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셨어요”

뜻하지 않은 고난을 겪으면서 백 사모는 오히려 이전에 없었던 ‘대담함’을 갖게 됐다. 하나님께서 가족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평소 겁이 많았다는 백 사모는 “목사님이 가신 후에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다”며 “평생 못할 것 같던 운전면허도 따서 요즘 차도 몰고 다닌다”고 했다. 백 사모와 세 딸은 이제 박 목사가 못다 이룬 꿈을 향해 일어섰다. 고 박한주 목사가 생전에 꿈꿔왔던 20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첫발을 디뎠다. 지난 2년 힘든 시간이었지만 벌써 네팔에 교회당을 세웠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지만 꿈을 꾸다보면 하나님이 채워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가장 큰 아픔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은 제천 화재참사의 유가족들은 꿈을 향한 도전의 날개를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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